개인 과외

by Loche


아들의 중학교 졸업을 2주가량 앞두고 가졌던 담임 선생님과 면담에서 선생님은 할 수만 있다면 개인 과외를 시키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하셨다. 그 말씀 속에는 그 정도로 아이의 학업 수준이 심각하게 낮고 특단의 조치가 아니면 고등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아이들에게 과외는커녕 학교공부를 위한 학원도 한 번도 보낸 적 없었고 그럴 경제적 형편도 안된다. 만약에 과외를 시킨다면 미래를 갉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주말에 서울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와 여동생과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 상의하고 계속 생각해 본 결과 일차적으로 스마트폰부터 뺏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하게 들었고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의 폰을 할머니에게 넘기고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애들 엄마 집의 데스크톱 컴퓨터이다. 폰은 회수했지만 데스크톱으로 게임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나와 할머니의 노력은 무용지물이다. 아이들이 컴퓨터 원격제어 앱을 깔 수 있게 엄마의 승인을 얻으라고 말했고 다음 날 물어보니 애들 엄마가 아예 컴퓨터를 못쓰게 비밀번호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나에게 협조하는 전처. 자기도 문제의 심각성을 이제야 인식했나 보다. 할머니에게 폰 뺏긴 이야기를 듣고도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었겠지. 일단 전자기기로부터 차단은 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생각을 제안을 해도 아들은 그것을 달리 해석했다. 미스 커뮤니케이션. 말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이대로 놔두면 큰 애와 똑같이 될 게 불 보듯 뻔하였다.


그리하여 어제 새롭게 떠오른 생각은 내가 아이들에게 직접 과외를 해주는 것이다. 방향을 잡아주고 면학 분위기를 형성해 주고 공부 방법을 지도해 주는 것. 지난 글에 올린 것처럼 AI를 활용해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고등학교 과정도 내가 모르는 것이 많겠지만 AI가 있기에 아들과 딸과 같이 문제를 찾아보면 된다.


오늘 아들의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제안했다. "아들아 아빠 신용카드 줄 테니까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네가 필요한 책들 다 사 바로 오늘부터. 그리고 아빠가 최대한 시간 내서 같이 있어줄게. 주말 토요일 일요일 하루 종일 아빠랑 대학도서관에 같이 가자. 그저께 밤에 그 대학 산책하다가 도서관을 둘러보니 전보다 리모델링되었고 안에 들어가니 외부인도 대학도서관 앱 설치하고 QR 발급받으면 도서관 출입이 가능하더라. 오전 6시부터 밤 11까지. 그 옆의 대학은 무슨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총장 승인을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고 그것도 평일 오후 6시까지 밖에 안되는데 C 대학은 일반인도 출입이 가능하다니 얼마나 좋아." 옆에서 듣고 있던 고3 딸도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전에 그 대학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도서관에 가보았는데 출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았는데 된다고 하니까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공부할 장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일단 이번 주말은 대학도서관에 가보고, 내 집도 가능하고, 주말에 내 사무실에서도, 카페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당분간 주말 약속 잡지 마, 입학 전뿐만 아니라 학교 다니는 중에도. 지금 비상 상황이야, 지금 초반에 갈피 못 잡으면 고등학교 3년 내내, 그 이후에도 미궁에 빠질 테니 방향 잡을 때까지는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아빠가 시간이 되면 학습 지도와 도움 줄게. 될 때까지."


"아빠, 근데 그게 가능해?"

"그럼, 내 남는 시간 다 너희를 위해 쓸 거야."


나의 이런 파격적인 제안은 아이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나도 또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몇 주말도 아니고 끝날 기약 없이 매주 주말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종일을 아이들을 위해서 쓰겠다는 것은 나의 개인 시간과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사적인 만남을 완전히 희생한다는 뜻이기에 아이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


내 한 몸 다 바쳐 너희들이 잘 되게 도와줄게


과외선생 와봤자 매일 오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두세 시간일 텐데 아빠는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정서적인 교감도 해주니 비교도 안되게 좋겠지


"4월 중순에서 말 경에 중간고사부터 내신에 들어가는데 처음부터 잘 받을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상승 커브가 중요해, 계속 성장하면 된다고. 아빠가 도와줄게, 같이 공부하자. 그리고 스키는 다음 주 월요일에 가자, 그리고 몸 괜찮으면 수요일도. 금요일은 내려오는 길이 많이 막힐 테니." 막내딸이 말한다 "그래~ 월요일 수요일."


오늘 큰 딸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력 주가가 또 많이 올랐다. 벌써 140% 수익률. 작년 5월에 애들 엄마가 딸에게 넘겨준 예적금과 용돈 모은 돈 그리고 내가 보태준 돈 2200만 원을 모두 주식 사라고 했을 때 매우 불안해하면서 걱정했던 딸이 오늘 점심은 뷔페에 가서 자기가 사겠다고 말한다. 돈 많이 벌었다고. "주식 말하는 거지? 그 돈은 쓰는 게 아니라 계속 불리는 거야. 30억, 50억 원 될 때까지." 막내딸이 묻는다 "그 큰돈을 어떻게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거는 잘 버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거야.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무조건 적어야 해, 최소 50% 이상 적게. 카페 같은 데 가서 5천 원 6천 원씩 턱턱 주고 음료수 사 마시면 돈을 모을 수가 없어."


점심은 뷔페 대신 가성비 좋은 착한 가격 식당에 가서 각기 다른 메뉴를 시켜 맛있게 나눠 먹었고 넷이서 3만 원 나왔다. 졸업식이라고 꼭 근사한 데 가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예전처럼 들지 않았다. 돈 쓰는 건 쉽다. 하지만 돈을 모으고 불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궁극에는 큰 기쁨을 준다.


식사를 마치고 고등학교 교복 치수를 재러 학교에서 지정한 교복점에 갔는데 국가지원금 30여만 원 외에도 23만 원이 추가로 들었다. "비싸네, 중학교 교복 맞출 때는 이렇게 안 비쌌던 것 같은데 허유.." "그러게 말이야 아빠, 많이 비싸다.."


미처 예상하지 않았던 뭉치돈이 빠져나갔다. 안 쓸 수도 없고. 점심을 1인당 5만 원 넘게 주고 근사하게 뷔페로 먹었다면 그 순간은 잠시 기분 좋았을지라도 가족의 미래에 대한 대비 심리는 불안해진다. 써도 써도 쓰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많아질 때까지는 궁핍하게 살아야 한다.


작년부터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하면서 먹는 것에 예전처럼 지출하지 않고 그래서 맛있는 것을 예전처럼 사 먹지 못함에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참고 인내하고 안 쓰고 투자하고 공부한다.. 자녀들에게도 나의 이런 마음가짐을 계속 말해주니 아이들도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습관이 점점 단단하게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보고 싶다... 네가

요즘 얼마나 보고 싶은지 모르겠어


참으면서 더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아끼고 준비하며 다시 만날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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