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점심을 꽤나 훌륭하고 가성비 좋은 한식뷔페에서 다들 만족스럽게 먹은 후 대학도서관에 데려다 놓고, 지역도서관에서 주관하는 '트렌드 코리아 2026' 저자 강연에 참석하였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 있었던 좋은 강연이었다.
4시쯤 대학도서관으로 돌아와서 애들이 어디 있나 찾아봤는데 도서관 안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전화를 해보니 도서관 밖 계단에 앉아있다고 해서 나가보았다. 하는 말이 도서관이 숨 막혀서 나왔단다. 너무 조용하다고. 내가 봐도 정적 그 자체인 분위기. 자기들은 여기서 공부 못할 것 같고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 그럼 집으로 가자. 애들을 데려다주고 나는 사무실로 왔다. 나도 개미 소리 하나도 안 들리는 그곳보다는 내 맘대로 혼자 말할 수 있고 소리 내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무실이 훨씬 편하고 좋다.
공부하기에 완벽한 공간, 난방비도 전기료도 안 들고 화장실 물 값도 안 든다. 정수기에서 바로 뜨거운 물도 나와서 차 마시기도 좋고, 주말에 출근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서 맘껏 크게 소리 내서 영어 책을 읽고 구글 발음을 따라서 발음도 해보고 좋다. 가끔 스테레오 스피커로 풍성하게 음악도 들으면서. 지금은 Amadeo Vives의 Bohemio를 틀었다.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 무대에 섰던 곡이고 한국에서 많이 연주했던 딱딱한 독일풍 음악과는 참 다른,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곡이다. 같은 사유로 라벨의 음악보다는 드뷔시의 음악을 선호한다. 틀이 없고 자유로운 음악을.
https://youtu.be/KQrGHG-HGa8?si=-kHPUA9Wg2PFTxDX
독립 사무실이 생기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회사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려고 하였는데, 사무실이 생기니 정반대가 되었다. 어제는 사무실에 있다가 저녁에 걸어서 50분 거리의 집에 가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다시 사무실로 와서 밤 12시 너머까지 있었다. 그리고 오늘 토요일도 사무실로 왔고. 모네의 수련 그림도 사랑하는 여인이 선물한 꽃도 있다.
일이 있건 없건 몸이 피곤하지 않으면 사무실로 온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이런 내가 좋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시간과 요일에 상관없이 월화수목금금금하게 된다는 일론 머스크의 말처럼. 사무실에 할 수 있는 일은 지식과 지혜의 추구. 사람들을 만나 소비하고 감각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일적인 면에서 보자면, 회사 일을 최우선 순위로 해서 팀장을 비롯한 고객들의 소리에 신속하게 답을 준다. 꽤 분량이 많은 서류 작성도 메일을 받자마자 집중해서 최대한 빠르게 작성해서 보내준다. 벌써 여러 차례 그렇게 빠른 처리를 해주니 팀장이 고맙다는 메일도 두 번 보냈다. 다른 부서에서 부탁한 일도 빠르고 퀄리티 높게 해결해 준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내 공부하는 시간으로.
5시쯤 와서 어느덧 11시로 접어든다. 조금씩 몸은 피곤해지지만 오늘도 배우고 성장하기에 기분이 좋다.
몇 해 전에 사놓고도 아직 개봉 안 한 잉크를 써보려고 만년필을 세척하였다. 다음 편지는 이 잉크를 사용해서 써야지. 편지지에 펜으로 써서 편지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는 손 맛이 무척 오랜만이면서도 좋다. 즉석으로 주고받는 카톡이나 이메일과는 달리 천천히 정성들여 손으로 쓰고 붙이는 편지는 '변치 않는 고전적 가치' 라는 오늘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 맨마지막의 근본이즘에 해당한다.
우체부의 손을 거쳐
내 편지를 어떻게 읽을까 상상하며
답신을 기다린다
그렇게 주고받는 편지가 쌓여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다시 볼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