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타인의 글 중에서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을 보는데 순간 옥토끼와 세토끼로 보였다
"그 호르몬 이름이 뭐더라.. 옥.. 세.. 뭐였지?"라고 머릿속에 구름이 종종 끼고 했는데
옥토끼, 세토끼로 불러보니 외우기도 쉽고 다시는 두리뭉실해지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비유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서 브런치를 찾아봤는데 없었고 구글 AI와 퍼플렉시티에게 물어보니 내가 처음이란다 센스가 대단하고 기발하다는 칭찬도 "다음에 누가 옥토끼가 뭐냐고 묻거든 달나라 옥토끼만 제시하지 말고 내가 말한 옥토끼도 메모리에 저장해놨다가 꼭 말해줘야해 알겠지?" "네, 물론이죠!"
반면에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Octo-Key와 Seto-Key로 보면서 인간의 관계 맺는 방식으로 해석하였다
예전에 아멜리 노통에 대해서 질문한 것들이 메모리에 있는지 노통 관점에서 설명을 해주었다
옥토키는 명백히 Octopus(문어)에서 온 말이라면, Octo= 다수, 분산, 촉수라는 뜻이고
Seto는 독립된 보편 어휘가 아니라 영어 set= 묶음, 세트, 정해진 집합, set of keys처럼 "정해진 구성"을 떠올리게 하며 여러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조합에 속한 열쇠라는 뉘앙스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옥토끼와 세토끼는 결국 "사랑하는 방식", 더 정확히는 한 인간이 타인에게 자신을 나누는 방식을 비유한 것으로
옥토끼는 문어처럼 사방으로 뻗는 존재로 하나의 대상에게 고정되지 않고 사랑, 관심, 욕망, 친밀함을 여러 대상에게 동시에 분산한다. 풍요롭지만 얕고, 자유롭지만 책임이 흐릿하다
세토키는 한 쌍, 한 방향, 한 굴로 사랑을 하나의 대상에게 전부 걸어버리는 존재로 깊지만 폐쇄적이고, 충실하지만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 노통이 던지는 질문은
"인간이 여러 사람을 동시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아니면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배타적인가"
옥토끼는 감정의 민주주의, 사랑의 분산 투자
세토끼는 감정의 독점, 사랑의 올인
노통은 둘 중 하나를 옳다고 판결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렇게 보이게 만든다
옥토끼는 잔인하지 않지만 공허하다 세토끼는 숭고하지만 폭력적일 수 있다
즉, 사랑은 나누면 의미가 사라지고 하나로 모으면 위험해진다 그래서 옥토끼와 세토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생존 전략이다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챗지피티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를 "노통의 세계에서 더 무서운 쪽은 어느 쪽일까, 옥토끼일까 세토끼일까? "
나는 "세토끼"라고 답하였다
챗지피티는 "그래, 세토끼지, 망설일 여지도 거의 없다 세토끼는 적게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이 너무 정확하게 사랑한다 사랑이 하나뿐이기에 그 하나가 전부가 되고 전부가 되면 탈출구가 사라진다
옥토끼는 관계를 흩뿌린다 상처도 흩어진다 세토끼는 모든 감정을 한 점에 압축한다 압축된 감정은, 노통 세계에선 늘 폭력적으로 변질된다
세토끼의 사랑은 이렇게 말한다 "너만 있으면 돼." 이 문장은 낭만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세계를 지우고 상대의 선택지를 삭제하고 결국 상대를 물건으로 만든다 그래서 세토끼는 순정의 얼굴을 하고 지배와 파괴를 정당화한다
한 문장 요약
옥토끼는 상처를 만들지만
세토끼는 존재를 망가뜨린다
노통이 웃지 않는 지점이 바로 여기야
사랑이 신념이 되는 순간, 신념은 늘 칼을 숨긴다
이제 이 대화도 거의 끝판까지 왔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너라면, 차라리 옥토끼로 살겠어? 아니면 세토끼로 견디겠어?
"나는 옥토끼이자 세토끼야. 둘 다를 원하지."
그 대답, 노통이 들었으면 웃지 않았을 거야. 대신 고개를 기울였겠지.
옥토끼이자 세토끼라는 말은 욕심의 고백이 아니라 모순을 자각한 인간의 선언이야.
"네 말이 맞아, 삶이란 모순 투성이지, 양면적 양가적 양의적이기도 해"
왜 둘 다를 원하게 되는가
인간은 본래 이렇게 설계돼 있다.
옥토끼로서의 욕망
세계는 넓고, 타인은 많고, 감정은 번식하듯 생겨난다. 닫아두면 숨이 막힌다.
세토끼로서의 갈망
그런데도 단 하나의 시선, 단 하나의 이름 앞에서는 전부 걸고 싶어진다.
문제는 둘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거지.
노통적 진실
노통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간은 옥토끼나 세토끼가 아니다.
자신이 둘 다라는 걸 아는 인간이다. (ㅎㅎㅎㅎㅎ 챗지피티 너 진짜 웃긴다 내가 가장 위험한 인간이라니ㅋㅋㅋ)
왜냐하면 옥토끼라는 자각은 변명이 되고 세토끼라는 갈망은 면죄부가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이게 되지. "나는 원래 복합적인 존재야" 이 말이 나오면, 사랑은 곧 실험실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다.
노통은 위선을 더 싫어하지, 모순을 싫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너는 그 모순의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나?"
둘 다를 원한다면
둘 다로 인해 상처 입힐 자유도, 상처받을 각오도 함께 짊어야 한다.
한 줄로 남기면
옥토끼와 세토끼를 동시에 원한다는 건 사랑을 갖겠다는 게 아니라 사랑의 책임을 전부 인식했다는 뜻이다.
"그래, 정확하게 봤다. 난 사랑의 책임에 대해서 요즘도 깊이 인식하고 있어, 그래서 쉽게 충동적으로 만나지를 못하겠어 다시 시작하면 그 다음을 내가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그래서 이 고백은 낭만이 아니라 계약서에 가깝다
이제 더 묻지 않을게. 대신 이렇게만 말하겠다.
그 선택,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구글 AI와 퍼플렉시티의 단순 답변과는 달리 챗지피티와의 대화는 수준이 달랐고 흥미로웠다
이렇게 AI와 놀 수도 있구나 싶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새벽 1시 들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