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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취소 그리고 걸려온 전화

by Loche


수술 전날 저녁 아이 엄마와 보호자 교대를 마치고 다음 날이 되었다. 오전에 딸과 통화하는데 어쩌면 수술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새벽에 갑자기 구토를 하였고 열도 났는데(38.5도) 열이 있으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마취과 의사들이 말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저녁 밥이 안 맞았던가 또는 링거액 부작용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혈관에 바늘을 꽂는데 초보 간호사 실수로 혈관이 파열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아무튼 열이 났기 때문에 진료 차트에 기록이 되었고, 그 기록을 본 마취과 의사들이 이날 수술 안된다고 말해서 수술이 취소가 되어 버렸다.


어렵게 운 좋게 잡은 수술 날자인데 취소가 되다니 참... 의사 말로는 다음 수술 일자가 언제 잡힐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입원일 당일에도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토하고 열이 나다니.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지? 서울? 아마도 여론 조사일 거야. 끊을까. 최근에 그런 전화들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어서 다른 때 같으면 안 받았을 텐데 이 때는 왠지 안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몇 번 울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여기 S대학 병원 정형외과인데요 *** 보호자님 되시죠? **이 수술했나요?" (와.. 전혀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네 **이 아빠입니다. 아직 수술 안 했습니다." "수술 날자가 3월 14일로 잡혔는데 하시겠어요?" "N** 교수님이 수술해 주실거죠?" "네 당연하죠." "네, 좋습니다. 그날 수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S대 병원에서 하던 안 하던 일단 예약부터 해놓고 볼 일이다. 플랜 B는 항상 있는 게 좋다.) "네, 그럼 전날 13일에 입원하시고 보호자 분도 상주하셔야 하니 준비물 챙겨서 오시고 수술 전에 몇 가지 검사할 것도 있으니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딸에게 먼저 알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이미 아이 엄마를 통해서 Z대학병원 수술이 취소된 것을 알고 계셨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냐고 걱정하시길래 S대학 병원 수술 날자가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되려고 열이 났었나 생각이 된다."라고 말씀하셨고 나도 "왠지 그런 것 같죠? 신의 계시 같아요.(평소에는 관심 없다가 이럴 때만 신이 등장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일이 발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Z대학병원에서 연락 오는 것도 기다려보고 좀 더 알아보고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진 것은 잘된 것 같아요." "2주 정도 늦어지는데 그건 괜찮을까?"라고 물어보셔서 "어차피 기존 파열된 인대 제거하고 교체하는 거라 두 달까지는 괜찮데요."라고 말씀드렸다.


저녁에 딸을 만났는데 표정이 매우 안 좋고 힘이 다 빠져 보인다. 전화 상으로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의사 말로는 아이의 뼈가 작아서 하이브리드 인대를 고정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고 예전과 같은 회복은 힘들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예전처럼 스키 타기 어려울 거라는 뜻이다. 젊은 여자 아이의 경우 수술 실패 확률이 20% 된다는 말도 했었고, 이 의사의 수술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가 내가 기대하는 만큼 만족스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된다.


그렇다면 S대학병원 N교수는 어떨까. 나이가 젊기는 한데 최신 수술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고 하고, S대학 정형외과에서 N.2이다. 지방대학병원 N.1과 S대학병원 N.2의 수술방법과 실력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틀이 지난 오전이 되었는데 Z대학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네 *** 보호자입니다." "안녕하세요 Z대학병원 정형외과인데 수술 날자가 3월 4일로 새로 잡혔는데 그때 *** 열 없으면 수술하시겠어요? 입원은 3월 3일 오후에 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답변하고 전화를 끊었다.

예상보다 빨리 수술 날자가 잡힌 거에 대해서 매우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어디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 지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결정을 해야 한다.


일단, 딸에게 전화하니 갑자기 목소리가 밝아지면서 "오~ 정말?"이라고 말한다. 나는 좀 더 알아보고 선택하자고 말하고 머릿속이 매우 바빠지기 시작했다. 퍼플렉시티로 보다 자세한 질문을 던졌다. 아이의 나이와 현재 몸 컨디션, 부상 부위 설명과 뼈 이야기도 넣어서 두 교수 중에 누구를 선택하면 좋을지 물었더니 이런저런 답변을 주었고 그 답변에 해당하는 레퍼런스 자료들을 찾아봤다. 보다 보니 예전에 S대학 병원과 S대학 진료 협력 병원의 S대 출신 교수들이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Z대학병원 교수는 딸의 성한 무릎의 전방 인대를 떼어서 한다고 했고, S대 의사들은 전방 인대가 아닌 후방 햄스트링을 뗀다는 말을 했던 것이 문득 기억이 났고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 봤더니 요즘 전방 십자인대 수술의 추세는 80%가 햄스트링을 떼어서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Z대학교수는 예전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자료들을 보고 나니 S대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 든다. 어차피 Z대학교수가 말한 것처럼 실패 확률이 높다면 S 대학 병원에서 해도 적어도 그보다 못하지는 않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햄스트링을 떼는 것이 수술 절개도 간단하고 햄스트링의 재생도 80%까지 되고 운동선수들을 위한 인대의 강도도 잘 나온다고 한다. 단점으로는 무릎을 많이 굽히는 유도나 레슬링 선수에게는 안 좋다고.


의사도 결국은 쇼핑이다. 내 돈을 주고 의사를 사는 것이고 현명한 지출이 필요하다. 이왕이면 좋은, 잘하는 의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딸의 난치성 초고난도로 엉키고 파묻힌 치아 교정도 S대치과 병원에 가서 했는데 현재 있는 지역의 의사들의 파괴적 소견과는 달리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의사가 말하였고 몇 년에 걸쳐서 결국 훌륭하게 손상 하나 없이 얼마 전에 최종적으로 잘 끝났다.

사실 2주 반 전에 S대학병원에서 N교수에게 첫 진료받을 때, 이 분한테 두어 달 안에 수술받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고 진료협력센터의 직원도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수술 날자가 잡힐 거라는 기대는 희망 고문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협력병원을 소개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딸과 딸의 엄마를 설득해야 한다. 나는 S대학병원에서 했으면 하는데 둘은 어떻게 생각할지. S대학병원은 Y, K, S, A 같은 민간병원이 아닌 공공병원이다. 그리고 국내 최고의 권위와 자부심을 가진 교수들이라 학자적 양심이 상대적으로 다른 대학병원들보다는 더 있다고 보고 병원에서 압박하는 실적이 상대적으로 다른 민간병원들보다는 덜하다는 것을 2019년 각 대학병원별 비급여 진료 실적 현황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장 낮았다.


수술 10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토하고 열이 나서 수술이 취소되고 곧이어 S대 병원으로부터 수술 날자가 통보된 것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열은 병원을 나오자 마자 신기하게도 사라졌다. 지속시간이 12시간으로 짧았던 경우는 나나 애들이나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단 열이 나면 기본 3일은 지속되었다.)


S대 젊은 교수가 아무리 못한다고 한들 웬만한 지방대학 병원 교수들보다는 낫지 않을까. 게다가 그 과 교수들 중에서 No.2이다.


저녁에 엄마가 아시는 현역 정형외과 의사분과 통화를 해서 두 의사 중에서 누가 좋을지 상의를 하기로 했다. 이 또한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가 중요하다. 그전까지 관련 자료 찾아보며 지식을 습득해야겠다.


뭘 하든 내가 얼마큼 아는지가 참으로 중요하다. 아는 만큼 혜택을 보고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의사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AI 덕분에 많은 의료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곳의 아무 의사에게 내 몸을 별생각 없이 "믿고" 맡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서 공부하고 지식 습득해야한다. 끊임없이.


운도 내가 찾아 다니고 노력하고 실행에 옮겨야만 내 손 끝에 살짝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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