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병원의 비즈니스 모델

비급여 진료 호객 시장

by Loche

내일 딸의 수술을 위해 하루 전인 오늘 Z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입원 수속을 하는데 비급여 진료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라고 해서 비급여 항목이 있으면 하나하나 나에게 사전 고지를 하고 동의받으시라고 말하고 일괄 서명은 못한다고 말했더니 매우 황해하였다. 나 같은 보호자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10년도 넘은 일인데 아이가 K대학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다. 퇴원하면서 정산 내역을 보니 A형 독감, B형 독감 검사 비용이 비급여 진료 항목으로 각각 15만 원씩 청구된 것을 보고 의사에게 찾아가서 왜 그런 고가의 비급여 검사를 사전 동의도 안 구하고 했는지 항의했다. 입원 사유와 별 관련도 없는 검사인데 30만 원이면 얼마나 큰돈인 줄 아시냐고 물었더니 20대 후반의 젊은 여의사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바로 병원에 클레임 하 2주에서 4주간 심사를 거쳐 결국 환불을 받아냈다.


입원실로 올라가기 전에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이는데 원무과에서 전화가 왔다. 비급여 진료 동의 서명을 하셔야 입원이 가능하다고. 알았다고 하고 서명은 하지만 비급여 검사나 진료 시에 나에게 동의는 받으라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병실로 가서 환자복으로 갈아입힌 후 전담 간호사인 A간호사에게 입원 안내를 받고 이런저런 동의서 서명을 하는데 먼저 수술 후 3일간 영양제와 진통제 투여 여부에 대해서 동의를 구하길래, 굳이 영양제 투여 안 해도 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B간호사도 아이가 어리니 안 해도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 영양제가 비싸기만 하고 투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산부인과에서 애들 엄마가 아이들을 연이어 출산하면서 몸소 체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다 병원 돈벌이 수단이고 당시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도 우리의 다 아는 것 같은 멘트와 표정을 보고 멋쩍은 듯 웃었다.)

Perplexity 질문과 답변. 이하 같음



진통제에 대해서도 사실상 마약이니 통증을 참을 수 있다면 일단 버텨보라고 딸에게 말하였고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두 간호사 웃는다. 래서 영양제도 진통제도 투여 안 하는 걸로 정리되었다. 마약은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 않다면 안 하는 게 아이한테 좋다고 생각한다.




병실로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불쑥 써든 어택이 들어왔다. 청색 가운을 입은 처음 보는 C간호사가 패드를 보여주며 수술 후에 MRI를 찍어야 하는데 비급여로 72만 원이라고 서명을 하라고 한다. 기가 막혔다.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 모의원에서 고분해능 3.5T MRI 찍었을 때 116,000원 나왔는데 72만 원이라고??) 옆에 있던 딸도 지난번에 얼마였는지 다 알기에 깜짝 놀랐다. 몇 초간 망설이다가 서명을 해서 보냈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딸과 상의를 하였다. "수술 전도 아니고 수술 후에 얼마나 잘 되었는지 보자는 건데 그걸 꼭 수술하자마자 볼 필요가 있을까? 퇴원해서 지난번 의원에 가서 찍어도 되지 않겠니"라고 말하였고 딸도 수긍하였다. (너무 비싸잖아. 그 돈이 얼마나 큰돈인데! 급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뻔하잖아 다 병원 돈 벌려고 하는 거야.)





딸과 상의를 마치고 바로 간호사실로 가서 MRI 안 찍겠다고 하니 C간호사의 표정이 몹시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이다. (왜? 당신이 기분 나빠할 이유가 뭔데? 환자는 진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고 병원 안내문에도 쓰여있잖아.) C간호사도 내가 안 한다고 하니까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않았다.(정말 꼭 필요한 검사라면 그렇게 쉽게 물러서진 않았겠지)



요즘 자주 애용하고 있는 검색 엔진 Perplexity로 "Z대학병원 비급여 진료에서 비싼 게 뭐냐"라고 질문을 던지니 Z대학병원의 MRI 평균 비용이 60만 원 초반대이고 전국에서 최고로 비싼 수준이라고 바로 답변이 나왔다. 하물며 70만 원대이다. 참 별별 정보가 다 나온다. 어떤 복잡한 질문을 던져도 그 질문 수준에 맞게 근거자료까지 다 첨부해서 자세히 답변해 주는 Perplexity이다. Perplexity도 여러 옵션이 있는데 최상위 검색기능을 써보니 몇 분씩 AI를 돌려서 매우 상세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무료로 사용하는 횟수는 제한되어 있고 그 이상은 유료로 써야 한다.


휴게실에서 책 보면서 쉬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다. C간호사가 수술 후에 무릎각도조절기를 써야 한다고 말했고 꼭 필요한 거라고 했다고 간호사에게 가보라고 해서 다시 그분을 만나러 갔다. "무릎 각도 조절기는 반드시 필요한 거예요. 가격은 20만 원 좀 넘는데 주문할까요?"라고 묻는다. 5초간 생각하다가 주문하시라고 말하고 휴게실로 돌아와서 바로 검색을 해보니 싼 거는 7만 원에서 비싼 거는 11만 원 정도였다. 흠.. 다시 간호사에게 가서 각도조절기 갖고 있는 거 있으면 그거 써도 되나고 물었더니 "갖고 있으세요?"라고 되물었고 나는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니 그럼 그거 쓰시라고 한다.


병원에서 가까운 의료기 상사를 구글맵으로 검색해서 전화해 보니 15만 원인데 M사이즈 재고가 없다고 한다. 당근으로 검색해 보니 두어 개 밖에 없고 맞는 사이즈가 없다. G마켓이랑 쿠팡으로 들어가서 알아봤고 S부터 2XL까지 사이즈가 있는데 무릎 위 20센티 허벅지와 무릎 아래 20센티의 종아리 직경을 재서 고르면 된다고 쓰여있다. 간호사실로 가서 D간호사에게 줄자를 빌려달라고 했더니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냥 좀 잴 게 있다고 하니 무뚝뚝한 표정으로 줄자를 내주었고 병실로 가서 딸의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즈를 잰 후 쿠팡으로 내일 도착하는 리뷰 좋은 물건으로 주문을 하였다. 가격은 84,000원.


딸을 전담하는 친절한 A간호사 복도를 지나가길래 상황이 이러저러하다고 웃으면서 말했더니 간호사도 "네~ 안 하시면 돼요~^^"라고 말하면서 밝은 미소로 동의해 준다.


내가 지나치게 궁색 맞은가? 난 아낄 수 있는 것은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검사와 진료가 몸에 좋을 게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의사와 병원이 하라는 대로 다 하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고 오히려 병신 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MRI 검사도 수술 후 2년이 될 때까지 6개월마다 찍으라고 하는데 이건 마치 태아가 장애아가 아닌지 검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장애가 있다고 결과가 나오면 안 낳을 건가? 낳을 거잖아. 네가 엄마면 뱃속의 애가 장애라고 죽이겠니? MRI 검사결과가 좀 이상하면 재수술을 바로 할 건가? 어차피 다시 안 째고 그냥 놔둘 거잖아. MRI가 진단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 불과 20년이나 되었을까? 그전에는 그거 없어도 재활 잘했잖아.


그냥 다 돈 때문이야. 수술하자마자 한 번, 6개월에 한 번씩 네 번, 이렇게 총 다섯 번 MRI 찍으면 72만 원 곱하기 5 = 360만 원이다.(아마도 실제로는 6개월마다 수가 인상이 조금씩 돼서 450만 원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병원 수입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매우 짭짤한 큰 금액이다.


오늘 나의 빠른 판단과 선택으로 아낀 돈은 100만 원 이상이다. 이 돈을 근로소득으로 벌려면 누구는 파트타임으로 한 달을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고 제1금융권 은행 적금으로 이자를 받으려면 직장인의 연봉에 해당하는 4천만 원을 생활비로 쓰지도 못하고 1년 동안 꼬박 묵혀둬야 세후로 받을 수 있는 돈이다.


한 푼 한 푼 아끼며 투자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지출하지 말아야 한다. 늦어도 5년 안에 경제적 자유와 지금 월 급여 이상의 현금 흐름을 만들 거다. 그러려면 극도로 허리띠 졸라매고 죽어라 공부해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나는 비장하다.. 눈덩이가 굴러서 커지는 게 보이니 이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고맙다 고마워.


「채권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서준석 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