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ewell, Vangelis.
어릴 적에 클래식과 가곡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올드팝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난 가요보다도 훨씬 더 많은 외국 음악을 듣고 자랐다. 특히 중학생 때는 올드팝을 정말 좋아해서 (당시에는 ‘힙’하다고 생각했는지) Simon & Garfunkel 음반의 가사를 전부 따라 부를 정도로 좋아했고, (현재도 좋아하는 소개 문구로 일부를 쓰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수학여행 때 나만의 올드팝 믹스테잎을 녹음해서 가져갔는데 그 믹스테잎의 1번 트랙이 Aphrodite’s Child의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한참 서태지가 혜성과 같이 등장해서 잘 나갈 때라 주변 친구들한테는 이상한 음악을 듣는 취급을 받았지만.
모두 내가 스스로 찾아들은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악들이었는데 집에서 너무 많이 듣다 보니 나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먼저 떠나간 데미안 루소스의 음악을 좋아하신다.)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가곡도 좋았고, 올드팝도 좋았고 그런 음악들을 듣고 따라 부르는 게 정말 좋았다. 아직까지도 그 시절 듣던 테잎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베토벤 교향곡 전집, 한국 가곡 모음집 등등도. (어린 시절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훗날 음악 공부를 한참 하던 시절 반젤리스의 음악들을 하나둘 알게 되며, 개인 음악이든 영화 음악이든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한 굉장히 신선하고 미래 지향적인 느낌, 또 우주와 추상적인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느낌을 워낙 좋아해 (또는 너무 시대를 앞서나간 느낌까지) 마치 이상향처럼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어릴 적에 좋아했던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멤버이자 주요 작곡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뭔가 그런 음악적 인연과 느낌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 현실에 맞는 음악 생활과 그 삶을 살다 보니, 또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뮤지션들이 내 머리와 마음에 채워지고 또 떠나고 하다 보니 정말 불같이 공부하던 음악 학생 시절에 비해 어느새 반젤리스도 조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만큼 나이를 먹어 가고 있으니 내가 어릴 적에 꿈꾸고 동경하던 록스타, 마에스트로들이 이제 하나 둘 떠나가는 시기가 오고 마는 것이다. 음악이라곤 통기타 하나 튕기는 거 외엔 아무것도 몰랐던 코찔찔이였던 내가 이만큼 나이를 먹고 그들을 다시 회상하고, 또 시간이 이만큼 흘러 다시 그들의 옛 음악을 듣고 하니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든다. 너무나도 아득하면서도 꿈결처럼 흘러버린 시간 같기도 하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생각에도 잠긴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에 얽혀있던 뮤지션들이 매년 조금씩 떠나간다. 앞으로도 조금씩 계속되다 말미엔 나마저 피할 수 없게 되겠지. 그들의 음악이 알게 모르게 은근히 스며들어 내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음악뿐만 아닌 삶 자체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음악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음악을 하는 것에도 어떤 의미라는 것이 있을까. 문득 생각에 잠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반젤리스도 그 원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중학교 2학년 때 믹스테잎 1번 트랙을 차지했을 때부터 였을지 모르겠다.
시절이 저물어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늘 마음이 아프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말 한 번 나눈 적 없지만, 그저 나와 기억이 얽힌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 떠나는 것만으로 그저 세월 무상을 느끼게 한다. 그 마음 아픔엔 그들이 떠난 사실이 반이고, 그만큼 내가 나이가 먹었고 그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사실이 반이다. 그래도 사람은 떠나도 음악은 남는다. 그래서 우리가 음악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당분간은 반젤리스 음악들과 함께 보내야겠다.
굿바이, 마에스트로. 반젤리스.
202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