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산 해미읍성 환경분석

by 로셜리티 LOCIALITY

[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이해와 로컬브랜딩 활성화방안 연구 ]

- 허동혁 / 석사 연구보고서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용역 발표 (2024.08)



2. 해미읍성 환경분석

1) 지리적 환경


<해미읍성>은 1963년 1월에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고 전체 면적은 196,381㎡로 되어있다. 현재의 <해미읍성>은 사적으로 지정된 이래 1980년대에 보수정화사업을 통해 정비 및 복원되었다. 성곽시설, 공해시설, 도입시설, 조경 및 기타로 배치되어 있다.

해미읍성 기본정보

성곽시설로는 진남문(남문), 지성루(서문), 잠양루(동문), 암문(북문), 해자, 포루, 체성 등이 있으며, 성내에는 복원된 공해시설로 동헌, 책실, 내아, 아문, 객사, 청허청, 옥과 우물지 등이 있다.

편의시설로는 관리사무소, 화장실, 주막, 전통찻집, 특산물 판매점, 국궁장, 전통민가체험시설, 돌탑, 야외전시시설 등이 있다. 조경 및 기타 관련 시설로는 천주교 유적인 회화나무(호야나무)와 느티나무(보호수), 대나무 군락 등이 있다

image.png 해미읍성 주요 시설
image.png 해미읍성 안내지도




2) 역사적 환경


ㄱ) 조선시대

<해미읍성>의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海美內廂城)’이다. 태종 16년(1416)에 서산 도비산에서 강무(군사훈련을 겸한 수렵대회)를 하고 해미에서 하루를 머물던 임금은 주변 지역을 살펴본 뒤에 이곳이 서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에 최적지로 판단했다. (그림3)과 같이 곧바로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충청병영: 충청도 지방의 육군 사령부)을 이곳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새로운 성을 쌓도록 명했다.

태종 17년(1417)부터 쌓기 시작한 <해미내상성>은 세종 2년(1421)에 완공되었다. 그 뒤로 230여 년 동안 충청도 지방의 모든 군사를 지휘하는 ‘충청병마절도사영성(충청병영성)’이 되었다. 이곳에는 종2품 벼슬의 병마절도사 휘하에 850여 명의 군사가 주둔했다. 선조 9년(1576) 무과에 급제한 이순신 장군도 3년 뒤에 이곳에서 열 달 동안 군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정약용도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열흘 동안 이곳에서 첫 귀양살이를 했다.


충청병영이 청주로 옮겨간 효종 3년(1652)부터 고종 32년(1895)까지 240여 년간은 충청도 5개 군영의 선임 군영이자 내포지방 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하는 ‘호서좌영’이 들어섰다. 그와 함께 해미현감이 호서좌영장을 겸하는 겸영장제가 시행됨에 따라 해미현 관아를 성안으로 옮겨 왔다. 그때부터 성 이름도 <해미읍성>으로 바뀌었다.



ㄴ) 근현대

<해미읍성>의 성벽 밖에는 해자(垓字)와 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쳐서 이중 방어벽을 구축했다. 적들이 접근하기 쉬운 평지성이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이다. 한때 ‘탱자성’이라 불릴 만큼 많았던 탱자나무는 이제 서문 주변에만 일부 남았고, 해자는 모두 메워져 버렸다. <해미읍성>의 정문은 진남문이다. 조선시대에 세워져서 여태까지 남았다. 반면에 동문(잠양루)과 서문(지성루)은 1974년에 복원되었다. 진남문의 문루 아래를 가로지른 받침돌에는 붉은 글씨로 ‘皇明弘治四年辛亥造(황명홍치4년신해조)’라 새겨져 있다. ‘황명홍치’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데, 홍치 4년은 성종 22년(1491)을 가리킨다.




3) 해미읍성의 역사문화 콘텐츠


<해미읍성>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그 공간을 보호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산시에서는 “서산시 해미읍성 역사보존회 육성 및 지원 조례”(2011.06.02.)를 제정하여 해미읍성의 활성화를 위해 첫째, <해미읍성> 보존 및 문화재사랑 운동에 관한 사업, 둘째, <해미읍성>의 시설물 보존과 활용을 위해 서산시로부터 위탁받은 사업, 셋째, <해미읍성> 문화재 보호구역 주민의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 넷째, <해미읍성> 발전을 위한 문화예술사업단 운영, 다섯째,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른 사회적기업과 예비사회적기업의 운영, 여섯째, <해미읍성> 활성화를 위한 전통문화공연사업, 일곱째, <해미읍성> 진흥을 위한 민속놀이·대회 등 전통계승사업, 여덟째, 그밖에 보존회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과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등을 수행한다.


이와 같은 조례의 제정은 문화재 활성화를 지속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으로 볼 수 있는데, 서산시에서 <해미읍성>에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증거로 볼 수 있다.


ㄱ) 해미 국제성지

해미읍성은 지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 11월에 천주교 박해과정(18~19세기)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수백여 명 무명 순교자의 넋을 기리고자 ‘해미순교성지’를 ‘국제성지’로 선포했다. 현재 해미읍성 내부에는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감옥터와 그 옆에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있다.

image.png 해미읍성 내 위치한 호야나무와 감옥터

‘해미국제성지’는 몇가지 종교적,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름 없는 무명 순교자들을 위한 성지라는 것이다. 하층민이어서 이름과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천 여명의 순교자가 발생한 유례 없는 성지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생매장 순교 터이자 그 순교자의 묘가 있는 가슴 아픈 비극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서산 해미 일대는 내포지역(충남 서북부지역)에서 천주교의 수용기부터 박해기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서 신앙이 가장 뿌리 깊게 내린 지역으로서, 천주교인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하는 등 종교 간 화합의 공간이자 포용과 융합의 가치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인식된다.

image.png 해미국제성지의 경쟁력 (출처:서산시 세계명소화기본계획, 2022)


ㄴ) 해미읍성 축제

2000년부터 시작하여 20회 개최한 <해미읍성>축제는 충청권에서 금산인삼축제, 보령 머드축제, 천안 흥타령축제,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 부여 공주 등의 대백제전 등과 함께 널리 알려진 역사문화 축제로, 2020년~2023년까지 문화관광축제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축제의 기획, 차별적이고 질 높은 콘텐츠, 접근성 등이 잘 구성되었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 외에도 오늘날 다양한 지역에서 읍성 및 군사 관련 소재(관방시설)로 축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축제들이 과거의 장소성과 역사성에 기반한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개발을 통해 축제의 특수성을 강화해가고 있다.

image.png 주요 읍성도시 축제 현황

해미읍성 축제는 <해미읍성>의 유산적 가치를 높여주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주는 중심 사업이다. 전국적으로 매년 800~1,000건의 축제가 열리지만, 읍성을 특화한 축제는 많지 않아 <해미읍성>의 병영성 성격을 부각한 기획은 좋은 접근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2023년 제20회 축제가 종전의 역사적 모색에서 벗어나 문화 예술적 접근을 시도하여 색다른 반응을 받았는데, 이를 지속해 추진하기 위해서는 <해미읍성> 내외의 문화시설과 활동을 동시에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로컬 100’에 포함된 문화예술형 축제에는 밀양 아리랑 대축제, 안산 국제거리극 축제, 광주 충장축제, 춘천마임축제, 통영국제음악제, 가평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등 이처럼 지역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잘 결합하여 콘텐츠화한 우수한 축제들이 선정되어 있어 <해미읍성> 또한 이에 맞는 차별성과 우수성을 확장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image.png 해미읍성 축제 관련 홍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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