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기록#6
싱가포르에서 버스를 타고 강 근처를 지날 때면
저 멀리서 노를 열심히 젓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카약을 타나 보네!
나도 언제 한 번 타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어떤 버스 정류장근처에서 나시 티를 입은 앳된 학생들 여럿을 봤다.
까맣게 탄 얼굴, 땀이 송골 송골 맺힌 학생들.
그리고 그들은 각자 패들을 하나씩 들고 있다.
선수들인가? 재밌겠다.
뜨거울 것 같은데 다들 대단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카약킹 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내 눈에 띄곤 했다.
친구를 새로 사귄 날이었다. 그 친구는 오기 전에 카약을 탔다고 했다.
나 : 우와 재밌겠다. 나도 타고 싶어.
친구: 그럼 같이 한 번 가보자!
그렇게 해서 싱가포르에 온 지 1년만에 드디어 카약킹을 하게 됐다.
설레는 맘을 가지고 카약킹하는 장소에 모였다. 나의 한국인 친한 언니도 같이 가자고 불렀다.
스태디움 역에 내려서 카약킹하는 장소로 걸어가는 데 마치 서울의 한강 공원의 느낌이 났다.
나시 티를 입은 사람들, 웃통을 벗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에너지를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사람들, 발리볼을 하는 사람들,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치 카약을 다 탄 후에 패들을 들고 집에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보였다.
우와 이제 그럼 우리 저 패들로 카약을 타는 거야?
아니이- 저건 드래곤 보트용이양.
드래곤 보트? 드래곤 보트는 처음들어봤다.
근데 샌들을 신고 카약을 탈거야? 위험해보여.
친구가 말했다.
굽이 별로 높지도 않은데 벗어야 하나...고민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신고 나왔는데 친구가 위험하다하니 벗어야할 것 같았다.
그럼 벗고 탈까? 너무 뜨거울 거 같은데 저기 H&M가서 양말이라도 사올까...
모자와 긴팔, 긴바지만 챙겨왔는데 너무 생각 없이 왔구나 생각했다.
다행히도 친구의 쪼리를 빌릴 수 있었다.
친구: 이거 220인데 맞으려나..?
내 발은 230인데 다행히 들어갔다. 사실 좀 작았지만 딱 맞는데! 빌려주라~하고 냉큼 빌려 신었다.
카약의 종류는 다양했다.
2명이 탈 것인 지, 1명이 탈 것인지에 따라 카약이 달랐고 라이센스가 있어야만 탈 수 있는 카약이 있었다.
나와 언니는 2명이 탈 수 있는 카약에 같이 타기로 했다.
그리고 라이센스가 있는 이반은 혼자서 closed 카약을 타기로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안내사항과 패들 사용법을 배웠다.
언니와 영차영차 카약을 물가로 옮겼다.
그리곤 이제 탑승할 차례!
언니 먼저 뒤에 타겠다고 했고, 언니가 무서워하며 카약에 탔다.
언니가 탈 때는 실감나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타려니 너무 무서웠다.
흔들거리는 카약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발 하나씩,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리곤 너무 무서워서 허리를 굽힐 수도 없었다.
마치 얼음땡을 하는 것 마냥 몸이 굳었다.
패들을 넘겨받고는 카약킹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무서운데
흔들거려 언니 무서워 ㅠㅠ
덜컥 겁이 나서 무섭다고 찡찡댔다.
그러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여기 아무도 빠진 사람 없잖아.
정신만 차리면 돼.
호들갑 떨지 말고 패들을 움직이면 돼.
다행히 언니가 뒤에서 패들을 맞춰보자고 했다.
그렇게 왼쪽, 오른쪽 패들을 움직였다.
흔들거리기는 하지만 뒤집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린 이반을 따라가면 된다.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무서웠지만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쭉쭉 나아갔다.
무서워서 뒤를 볼 수 없었는데 어느 새 저 멀리 스태디움이 보일 정도로 멀리 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부딪힐 위험도 없고, 지금까지 잘 왔으니 작은 움직임이 생겨도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고 세뇌했다. 그리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출발 할때만 해도 사진은 절대 못 찍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냥 마음을 가볍게 먹으면 되는 거였다.
나만 물에 빠질리가 없으니까!
으쌰으쌰 소리를 지르며 무리를 지어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드래곤 보트를 탄 사람들이었다.
어찌나 절도있게, 빠르게 움직이던지...!
그래도 힘들어보여서 나는 드래곤 보트를 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냥 쉬고 싶을 때 쉬고,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일 수 있는 카약이 좋은 것 같다.
쨍한 날씨였지만 구름이 햇볕을 가려주었고, 간간히 부는 바람들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때론 바람 때문에 카약이 더 흔들려서 무섭기도 했지만...!
잔잔한 강가 위에서 노를 젓고, 좀 쉴까? 하고 쉬고
이제 가볼까? 하고 오른쪽부터? 오른쪽 ~ 왼쪽~구령을 외친다
구름을 봐 -
친구의 말에 파아란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행복했다.
너무 좋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카약킹하기 싫다고 집에 있는 남편이 생각났다.
처음엔 서로 벌벌 떨며 노를 젓지만 정신차리고 노를 함께 저어나가면
이렇게 멋진 풍경과 여유를 함께 느낄 수 있는데...함께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생각했다.
동시에 호들갑 떨던 나를 의연하게 다독이며 함께 카약킹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 고마웠다.
그리곤 바지가 잔뜩 젖은 채로 카약킹을 끝냈다.
다음에 또 카약킹을 하게 된다면 여분의 옷과 신발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샤워실도 있으니 샤워용품과 타올도!
마냥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무서웠고, 생각보다 더 재밌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카약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