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중력선 위에서 최소의 에너지로 오래 서고 걸을 수 있는가?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존엄은 나이나 재산, 직함에서 오지 않는다.
진정한 존엄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
혼자 일어나고, 화장실에 가고,
문을 열고 나가 햇빛을 볼 수 있는 것.
이러한 이동 가능성은 존엄의 조건이다.
걷기가 줄어들면 외출이 줄어든다.
외출이 줄어들면 대화가 줄어든다.
대화가 줄어들면 욕구와 사고도 줄어든다.
걷지 못하면 세상은 좁아진다.
즉 몸의 이동성은 뇌의 활동성과 연결된다.
걷기는 뇌를 깨우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그래서 걷는 사람은 계속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까지 걷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스스로 선택한다.
어디에 갈지, 누구를 만날지, 언제 쉴지.
이 선택권은 이동성에서 나온다.
누군가에게 떠밀려 움직이는 삶과
스스로 걸어 나가는 삶은 다르다.
직립과 걷기는 독립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나이라도 어떤 사람은 느리게 약해지고,
누군가는 급격히 무너진다.
차이는 단 하나다.
중력을 계속 다뤘는가.
노년이 되어서 갑자기 직립과 걷기를 회복하는 것은 참 어렵다. 걷기는 평생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은 소모하고 있는가, 충전하고 있는가.”
몸은 평생 직립과 걷기로 생존하도록 설계되었다.
직립과 걷기는 인간의 기본 생존 구조이다.
당신은
중력선 위에서
최소의 에너지로
오래 서고 걸을 수 있는가?
가장 자주 많이 받는 질문.
Q. 그래서 수업 몇 번 하면 좋아져요??
A. 한 번으로도 바뀝니다.
몸은 입력이 들어가면 바로 달라지거든요.
한 번만으로도 좋아지는 이유는
신경계에 새로운 입력이 들어가면서
신경가소성과 성장 인자가 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 세션마다 몸은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다만 그 변화를 일상에서 안정적으로 쓰려면
몇 번의 반복을 통해 몸에 정착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업은 치료가 아니며, 몸과 신경계 학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