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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Nov 25. 2020

가난한 부자

나는 씀씀이가 헤픈 편은 아니다. 언제나 스스로 일해서 번 돈의 범위 안에서 요령껏 지출을 했고 그 한도를 벗어나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스스로의 소비 습관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있고 소비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가진 돈의 한도를 넘지 않게 소비하는 습관은 엄마의 가르침이었다. 한 달 용돈을 주시면 그 돈 안에서 꼭 사야 하는 것과 사고 싶은 것을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배가 고파서 간식이 사 먹고 싶어도 갖고 싶은 가수의 앨범을 사기 위해 기꺼이 배고픔을 참았고 친구 생일 선물을 사느라 예기치 못한 지출을 해버린 달엔 다음 용돈 받는 날까지 하루가 열흘 같은 지루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약속된 날짜에 약속된 금액을 규칙적으로 받았고 주어진 금액 안에서 필요와 욕망을 모두 해결하면서 소비에 대한 감각을 어느 정도 익힐 수가 있었다. 학생이 받는 용돈이라는 것은 주는 입장에서는 많은 것 같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늘 부족하다. 만원만 더 받으면 부자가 될 것 같은데 막상 더 받아도 쪼들리고 부족한 건 매한가지인 것이 용돈이다. 지금이야 고등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런 일자리도 없었거니와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해야 했던 시절이라 돈 벌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용돈은 아껴 쓰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끼는 게 습관이 되었던지라 택시를 타는 것을 두려워했다. 택시를 타면 감당할 수 없는 요금 폭탄을 맞을 것 같아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은 택시를 타지 못했다. 그때가 좋았다. 그렇게 택시 타는 것도 큰 마음먹어야 했던 그때가 그립다. 한 번 커진 씀씀이는 줄어들기 어렵다는 걸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씀씀이 늘리는 것을 더 아꼈을 것이다.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마음만 들뿐 만족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어느 날이었다.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많이 일해야 할 것이고 많이 일한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그만큼 노동에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돈과 시간 중에 시간을 선택하기로 한 그날부터 돈에 욕심 내지 않고 살았다. 돈 대신 시간을 버는 쪽을 선택했고 그 시간으로 책을 읽고 여행을 다녔다. 그래서 아쉬웠다. 돈 씀씀이가 더 적은 사람이었다면 더 적게 일해도 되었을 것 같아서. 대학생 때의 나는 커피 전문점의 카페라테를 사 먹지 않았다. 자판기 커피만으로 충분히 맛있었다. 예쁜 가방을 하나 사면 그 가방을 들 때마다 행복했고 그 가방이 떨어지고 나서야 새 가방을 샀다. 순전히 필요에 의한 소비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욕망에서 비롯되는 소비가 필요에 의한 지출을 넘어서게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어릴 때 용돈을 받으면 나는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혹시나 돈 쓸 일이 생길까 봐 아껴두었다가도 용돈 받는 날까지도 별일이 없으면 그걸 모아 두어도 될 텐데 굳이 몽땅 다 써버렸다. 아껴둔 돈을 한꺼번에 쓸 때의 쾌감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고 아끼느라 참고 있었던 욕망들에게 그때만큼은 자유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용돈을 받아도 동생은 항상 여윳돈이 있었다. 꼭 필요한 데만 돈을 썼고 남으면 그냥 가지고 있으니 조금씩 조금씩 모여 제법 목돈이 되었고 그것을 그냥 쓰지 않고 가지고 있는 거였다. 가끔 급전이 필요할 때 동생에게 비굴하게 갖은 아첨과 위협으로 돈을 빌릴 때마다 나도 돈을 모아야겠다는 다짐을 수 없이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어쩌면 돈을 쓰지 않고 모으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소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기를 기대한다. 절제, 욕망을 다스릴 수 있을 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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