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과 ⟪리어왕⟫에 이어 ⟪오셀로⟫를 만났다. ⟪오셀로⟫는 '이야고'라는 희대의 악인 캐릭터의 등장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야고의 악행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과거 뉴욕 공연에서 한 관객이 이야고를 연기하는 배우를 총으로 쏘아 죽인 일화가 있다고 하는데 총을 쏜 직후 연극이었음을 깨닫고 본인도 자살을 해버렸다고 한다. 역시나 처음 읽었을 때는 ‘제목이 ‘이야고’였어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극중 이야고의 비중이 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면서 제목이 왜 ⟪오셀로⟫인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오셀로는 베네치아 정부로부터 고용된 무어인 장군인데 풍채가 좋고 인품도 훌륭하다. 그리고 전쟁에서 세운 공이 있어 능력도 인정받는 인물이다. 오셀로의 전쟁 경험담을 듣는 걸 좋아했던 데스데모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셀로와 결혼을 한다. 상류층 백인 여자인 데스데모나가 유색 이방인인 오셀로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평강공주가 바보온달을 선택한 것에 비할만한 파격적인 행보였으니 이미 그것으로 그녀의 고귀한 사랑이 증명 된 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제대로 무르익기도 전에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뱀의 혓바닥에 넘어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처럼 오셀로가 뱀 같은 이아고의 세 치 혀에 놀아나 데스데모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야고는 오셀로 장군의 기수로 부관 자리를 탐내고 있던 중 승진이 누락되어 오셀로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고자 한다. 그 복수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겨냥하고 있고 아주 치밀하게 진행된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하게 만드는 전략인데 데스데모나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속삭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옥과 밤 둘이서 이 끔찍한 착상이 빛을 보게 해야 한다. -1막3장
지옥은 의심하는 마음이고, 밤은 이성이 잠드는 시간이다. 이야고는 이 둘을 잘 이용해서 오셀로를 무너뜨릴 계획이다. 처음에는 오셀로에게 그냥 이야기를 슬쩍 흘려만 둔다. 데스데모나가 카시오와 함께 있더라고. 오셀로는 그 정도 얘기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위를 높인다. 카시오의 잠꼬대를 들었는데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더라고. 귓가 모기의 날개짓처럼 집요하게 속삭인다. 오셀로는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그런 잠꼬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는 증거.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카시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오셀로는 이성을 잃는다. 데스데모나에게 진실을 묻지도 않고 의심을 사실로 확신한다.
오셀로는 체구도 크고 강건한 기상을 지녔고 하늘까지 솟구치는 파도에도 살아남은, 영혼과 육체가 모두 강인한 인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스데모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무리 튼튼한 댐이라도 작은 돌멩이를 맞아 균열이 생기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균열은 점점 번지게 되고 결국 댐도 무너지게 된다. 이야고가 불어대는 바람에 오셀로라는 거대한 댐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오셀로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못난 마음이 조금 거들었다. 의심은 약점을 파고드는 사악한 면이 있다. 베네치아 사회에서의 무어인이라는 존재는 잘생기고 집안 좋은 백인에게 열등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열등감은 마음이 평화로울 때에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데 유혹이 다가오면 버선발로 달려나가 의심의 손을 덥석 잡고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평생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다.
의심해 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의심'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으면 그때부터는 지옥이다. 머릿속을 스물스물 기어 다니면서 시시각각 고개를 쳐들어 온 정신을 괴롭힌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불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심은 분노와 함께 붙어 다녀서 더 고통스럽다. 의심이라는 것은 추측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라 형체는 없는데 머릿속에선 선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생되고 끊임없이 되풀이 되면서 서서히 나의 이성을 함락시켜 버린다.
걷잡을 수 없는 의심으로 마음이 괴로웠던 적이 있다. 의심이 생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다 보니 밤이 깊어도 잠이 들지 못한다. 밤은 위험하다. 밤에 써 둔 편지를 아침에 읽어 보면 손발이 오글거린다 하지 않나. 그만큼 밤은 이성 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시간이라 생각이 많아지는데 그것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자꾸 억지스럽고 지저분한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괴로워하다 새벽 즈음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헛웃음이 났다. 밤새 혼자 소설을 썼구나 싶었다. 그것도 유치 찬란 치정 로맨스 소설을 말이다. 그 후로는 의심이 생겨나려고 하면 그날 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성이 되살아난 다음날 아침의 허무한 코웃음이 떠올라서 고개 들려는 의심을 외면할 수 있게 되더라. 누군가 나를 속이려고 마음 먹고 덤비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자신은 없다. 하지만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질투하는 이들은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투하기 때문에 질투한다. 그건 스스로 생기고 스스로 태어나는 한 마리 괴물이다. -3막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