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어김없이 벚꽃이 만개했고 환호했고 연신 카메라를 드리웠다. 봄이 왔다고 요란하게 알리는 선전원인 양 온 세상을 분홍빛 머금은 화사한 꽃잎으로 가득 채워 놓고는 며칠 머물지도 않고 성급하게 떠나 버린다. 그러니 벚꽃을 한 번도 질릴 때까지 누려본 적이 없다. 벚꽃의 밀당인 건가. 아쉬운 듯해야 내년에 또 찾아왔을 때 처음 본 것처럼 환대해 줄 거라는 것을 아는. 아니라면 봄비의 시샘인가. 온 세상 벚꽃이 흐드러져서, 이쁜 게 벚꽃밖에 없는 것처럼 요란을 떠는 모습이 보기 싫었나. 이쁜 봄치마 차려입고 꽃놀이 갈 계획을 세워놓으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일부러 만개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서 제일 아름다운 순간, 가장 탄성이 쏟아지는 순간에 짠 하고 나타나는 심술쟁이 같다. 그 덕에 올해도 화창한 하늘 아래 만개한 벚꽃과 함께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유난히 봄비의 훼방이 잦았던 3월이었다. 봄을 맞아 운동을 시작해야겠단 어려운 결심으로 등산을 시작했는데 주말마다 내려 준 비님 덕분에 몇 차례나 등산을 미루어야 했다. 마음먹었을 때 시작하지 않으면 단호한 계획일지라도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경험들이 있었던지라 야속했다. 하지만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미운 짓을 해도 미워할 수가 없는 마음이 있지 않나. 큰 사랑을 품고 있으면 얄미워는 해도 진정 미워는 할 수 없다. 내게 비가 그렇다. 비에게 맡겨 놓은 추억이 있다.
스무 살 여름, 문학기행에서의 첫날밤. 자정이 넘은 시간, 열댓 명의 청춘들이 지리산 자락 어느 마을 텅 빈 아스팔트 위에 둘러앉아 있다. 수줍음이 많은 나는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걸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데도 그 자리는 떠나기가 싫었다.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그 시간, 밤공기 속엔 온통 빗방울이 스며있었고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해서 곧 다시 비가 내릴 것 같았던 밤이었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여자애가 어떤 한 사람을 처음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 순수한 마음과 그 밤의 시간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랐던 스무 살의 나를 비가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이 훨씬 지난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그때의 마음이 참 곱고 깨끗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비바람이 흔들어놓기 전의 벚꽃처럼. 지금 나의 세계에 선명하게 그어놓은 경계선이 그때는 없었다. 그 ‘없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거다. 그때의 나를 찾아가 보고서야 내가 고집스러운 경계선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왔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알아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아니까 참 그립고 애틋하다.
한때 나의 전부인 양 가지고 놀던 곰인형을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무심코 열어본 상자 속에서 발견할 때의 기분을 알 것이다. 그 곰인형을 너무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나와, 그때의 마음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도대체 그런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디에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걸까? 모두 다 간직하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 적당히 잊고 적당히 기억하고 살아가다가도 가끔 비를 만날 때나 혹은 상자를 열었을 때 갑자기 휙 하고 시간여행을 해보는 것도 너무 괜찮지 않나? 그래서 비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너는 비를 좋아했던가...? 싫어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