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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Oct 23. 2021

버리기 아까운 말들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들은 모두 다릅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건강, 가족, 경제적 여유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필수 조건들에 견주어도 결코 시시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건 바로 ‘좋은 친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 전국 시대의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 이야기는 유명한 고사입니다. 거문고 연주로 이름난 백아가 마음을 담아 연주를 하면 옆에서 듣고 있던 종자기가 백아가 어떤 마음으로 거문고를 뜯고 있는지를 알아맞혔다고 하니 두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잘 통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소리[音]를 알아듣는 [知]다’, 지음(知音)이라 하여 마음을 알아주는 막역한 친구 사이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종자기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자신의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더 이상 없다며 거문고 줄을 칼로 끊어버렸습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 만났다 하더라도 관계를 건강하게 오래 지속시켜나가는 것 또한 내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학창 시절에는 싫으나 좋으나 학교에 가면 만나야 하니 별다른 노력이 없이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하면 우정의 끈은 아주 느슨하게 풀려버립니다. 양쪽에서 단단히 잡고 있지 않으면 결국 흐지부지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좋은 친구’와 인생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았습니다. 진정 시간이 가르쳐준 지혜입니다.     


우리에게도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궁금해하며 화장실까지 함께 가는 게 우정이라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복잡해진 삶을 살아내느라 그토록 친했던 친구와의 약속이 부담스러웠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여러 얼굴의 시간이 흘러 이제 다시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하면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3시부터 기다리게 되는 때가 되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세련된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눈여겨봐 둔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수다 떨 생각을 하면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만나면 그동안 읽었던 책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 아쉬웠던 점, 도저히 혼자서는 풀 수 없던 의문들도 함께 나눕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읽어 가는 게 좋을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글쓰기는 잘 되어 가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계획, 새로운 다짐의 말들도 오갑니다. 밥을 먹고, 산책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또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쉼 없이 이어집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아직 못다 한 말을 남긴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립니다.      


만나서 즐겁게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헤어지고 나면 모두 흩어져 날아가버립니다. 그것이 아쉬워 기록해 두었다가 한 번씩 펼쳐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는데 다른 이들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책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귀했기에 우리의 수다가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들을 많은 이들과 공유해도 좋겠다 싶어 서간문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편지는 대체로 두 사람이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주고받았습니다. 시작은 항상 창대했기에 카뮈와 그르니에처럼 운명이 우리를 가를 때까지 꾸준히 편지를 나누기로 약속하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주 평범한 두 친구의 편지들이라 친근하고 편안하게 읽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재미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지음으로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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