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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Nov 04. 2021

함께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 가고 있는 승희에게

지난 일요일에 단풍놀이를 다녀왔어. 엄마, 언니랑 셋이서 내원사를 갔는데 산이 온통 붉게 물들 정도의 단풍은 아니었지만 늦가을 정취는 실컷 느낄 수 있었어. 엄마는 발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를 참 좋아하셨고 언니는 내원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마주 보이는 커다란 산이 참 좋다고 했어. 나는 뭘 좋아했게? 햇살의 빛깔이 참 좋더라. 쨍한 가을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의 햇살이 커다란 나무들 사이사이에 일렁이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좋았어.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인데도 그날 자연이 내뿜기로 한 빛의 색깔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나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잖아. 그날은 유난히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 10월 내내 읽었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계수나무는 어떤 것일까 하고 찾아봤는데 못 찾았어.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나무가 거의 없더라고. 좀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26개의 챕터를 26일 동안 읽었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끝이 났네. 9월 말에 그 책을 시작할 때는 여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아쉬워했었거든.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데 다 읽고 나니까 너무나 적당한 계절에 읽었다 싶어. ‘여름’ 보다는 ‘오래 그곳에 남아‘가 제목의 주인인 것 같아서. 그 느낌은 또 여름보다 가을이 더 잘 살리잖아. 마쓰이에 마사시라는 작가와 첫인사를 나눈 건데 첫인상이 참 좋게 남았어. 그분이 나직하게 펼쳐놓는 이야기 속에 시간을, 자연을, 사람을 그리고 예술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태도가 스며있어서 좋더라. 다른 작품들은 또 어떨지 모르지만 마음이 촉촉해지고 싶은 날엔 이 작가님의 책이 생각날 것 같아.     


1982년 아사마산이 보이는 아오쿠리의 여름 별장. 82년도라는 시간, 연필을 깎아 설계도를 그렸던 시절, 실내의 공동 전화기로 ‘00씨 전화 왔어요’라고 전화를 바꿔주었던 추억들이 있었어. 아직은 첨단 기계들의 장악이 일어나기 전의 시대야. 그리고 건축이라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던 무라이 슌스케라는 건축가와 그 건축가를 존경하는 설계소의 사람들이 있었어. 좋은 것들은 다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좋은 것들도 시간을 비켜갈 수는 없잖아. 영원할 수 없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도 막상 끝이 다가오면 마음이 시리더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시간이 지속되길 바래도 그건 안 되는 거잖아. 붙잡을 수 없어. 좋아했기 때문에 더 미련이 남는 건데 시간은 좋은 시절에게나 그렇지 않은 시절에게나 공평하니까.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절’이 있지 않을까. 그게 남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보낸 시간들 중에 잊히지 않고 아련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절이 모두에게 있을 거야. 우리 엄마는 우리를 처음 낳아 기를 때 기저귀 빨래했던 이야기 하실 때마다 얼굴이 환해지시거든. 기저귀를 손으로 싹싹 문질러 빨아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새하얀 기저귀가 바람에 나부끼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셨다는 말씀을 자주 하셔. 그때가 엄마의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거겠지. 나는 언제였을까 하고 생각해봤어. 대학생의 신분으로 살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더라. 누군가를 순수하고 뜨겁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수업 시간에 떠들다 교수님한테 지적당했을 때 기억나? 그때 같이 떠들다가 내가 들켜서 혼나는데 네가 손을 번쩍 들고 “제가 그랬습니다.” 했었던 거 말이야. 나는 아직도 가끔 그때 너의 목소리가 떠올라서 박장대소를 하곤 해. 또 너 일본으로 떠나던 날 공항으로 배웅 갔을 때 비행기 타러 들어가는 네 뒷모습 보고 엉엉 울었던 날도 생각난다.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슬프더라 그때는. 그리고 일 년 후에 다시 돌아온 너를 만났는데 너가 빨간 목도리를 뒤로 돌려 묶고 나타난 거야. 지금 일본에선 이게 유행이라며, 그때까지 본 적 없는 노란색 긴 머리를 하고서. 그때 배꼽 빠지게 웃던 웃음소리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 그런 추억이 너무 많은 시절이었어. 그때의 모든 시간들이 그리워.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p180     


무라이 선생님이 건축에 대해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 삶이 그런 것 같아.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이 기억에 남고,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 말이야. 내가 대학 시절의 “제가 그랬습니다”라는 너의 목소리를 아름답게 기억하듯이 지금 우리의 이 편지들이 또 한 시절을 기억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 어떤 나머지를 만들어내고 있을지는 한참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 또 한 번의 아름다운 시절이 만들어지고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다 읽고 나서가 아니라 책을 펼쳐 읽고 있는 동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어. 상투적이지만 ‘힐링이 되는 소설’이라는 꾸밈말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짝 엿보고 있는 기분이었달까. 어린아이들이 천진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보고만 있어도 웃음을 머금게 되잖아. 그런 느낌이랑 비슷했어. 이른 아침 산책을 나서는 무라이 선생님의 문 여는 소리로 시작되는 여름 별장의 하루,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유키코와 사카니시, 설계실에서 일을 시작하는 아침 일제히 연필을 깎는 모습들, 태풍 치는 밤 장작불 앞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들인데 그런 장면들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졌어.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읽으면서 여름 별장을 깨우는 새소리를, 별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아사마산의 위용을, 별장 마당을 지키고 있는 아름드리 계수나무를 마음껏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소설 속에서 세 사람이 무라이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차 안을 채우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안 들을 수 없지.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그 부분을 읽으면 마치 그 자동차의 네 번째 좌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그 분위기가 느껴져. 무겁고 슬프지만 소리 내어 울 수는 없어. 선생님의 웃는 모습, 말하는 목소리, 일하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 난 마리아 조앙 피레스라는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연주로 들었어. 소설 속에서 마리코가 연주하는 곡이니 여성 연주자의 것이 더 소설 느낌에 가깝겠다고 생각하고 나름 선택한 연주자였다. K 씨의 추천곡이었다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걸 기억해낸 너도 참 대단하다. 네 편지를 읽고 리흐테르 연주로도 들어봤는데 참 좋더라. 훨씬 감정이 풍부하게 전해지더라고. 늦가을에 잘 어울리는 곡이어서 당분간 슈베르트를 자주 듣게 될 것 같아. 그리고 씩씩한 피아노로 둥근 음을 연주하는 것과 둥근 음을 가진 피아노로 씩씩한 음을 연주하는 것은 둘 다 너무 매력적이야. 그걸 사람으로 바꾸어 생각해봐도 그렇고. 상상해 봐도 너무 멋져. ‘의외성‘을 발견하게 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잖아. 이건 도저히 못 고르겠더라.

     

좋은 것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야. 마쓰이에 마사시가 오감을 총동원해서 이 별장에서의 모습들을 묘사했던 것도 많이 사랑해서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소중하니까 공기의 느낌, 나뭇잎 색깔, 그때 먹었던 음식의 냄새, 팔에 스치는 그녀의 손길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 말이야. 그리고 그 수고로운 정성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잘 와닿았고. 네가 글을 쓸 때 기울이는 정성이 떠오르는 부분이야. 좀 더 생생한 묘사가 글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읽는 이에게 너의 생각을 더 정성스럽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돼. 그걸 소홀히 하는 나의 글쓰기도 조금 생각해보게 되고.      


너의 말처럼 ’건축‘, ’시간과 죽음‘, ’완고함‘ 등 풀어내고 싶은 수다가 너무나 많은 소설이었어.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네 명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읽은 소설이라는 점도 참 좋았고. 특히 나는 J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참 좋더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충만함 만큼이나 소중하니까. 오늘 편지는 온통 책 이야기뿐이네. 우리가 만났다면 이것보다 세 배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겠지. 이제 곧 ’일리아스‘ 읽기의 대장정이 끝이 날 테니 그때는 꼭 만나서 나머지 이야기들을 나누도록 하자. 오늘은 이만 총총.     


2021.11.4.

손을 번쩍 들며 “제가 그랬습니다”라고 말하는 너를 떠올리며 정말 행복한 은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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