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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Sep 08. 2023

6월의 화룡점정

나는 6월을 아낀다. 그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한 번도 빼앗긴 적 없는 러블리한 그녀가 잃어버린 쾌청함을 다시 찾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매일 아침을 대기 오염 지수를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답답한 날들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는 그를 환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새파랗게 맑은 하늘을 펼치고 하얀 뭉게구름 몇을 놓아 장식한 다음 그 밖의 방해꾼들은 모두 쓸어 담아 바깥으로 비워낸다. 그동안 머뭇거렸던 산책 실컷 하라는 듯 어떤 걸림돌도 남겨두지 않는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동안 뿌연 먼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산등성이가 또렷한 윤곽선을 드러낸다. 그동안 참았던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가슴이 뻥 뚫리고 속이 시원해진다.      


여름이 좋다고, 여름을 기다린다고 말할 때의 여름은 정확히는 초여름이다. 본격적으로 반팔 티셔츠를 입기 시작하면서 가벼워진 옷만큼 몸도 가벼워져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져 좋다. 또 해지는 시간이 늦어지니 할 일을 다 하고도 여분의 시간이 더 주어진 것 같아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6월의 고유한 특별함은 저녁 6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어떤 물질적인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매력을 품은 마성의 시간이다. 밝다와 어둡다의 경계를 지나고 있는 하늘과, 구김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묻어있지 않은 명랑한 바람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지극의 행복은 이미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고 있음을 알게 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의 산책은 내가 이미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지를 가슴 깊이 감사하게 한다.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음을 깨닫게 하는 6월을 어떻게 편애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정원의 <시와 산책> 中 ‘나는 11월을 편애한다’라는 문장에서 차용)      


좋은 건 ‘실컷’이라는 부사와 쉽게 어울리는 법이 없다. 6월과의 사랑은 나의 사랑을 시샘하는 장마의 시작과 함께 작별을 고한다. 다행히 헤어져도 반드시 다시 만날 것임을 알기에 나의 이별에 슬픔은 없다. 그리고 사실 장마는 6월 예찬의 훼방꾼이 아니라 비로소 완전한 6월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장마가 짊어지고 오는 먹구름에는 나의 추억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은 지금도 스물 몇 살의 그 날들을 소환한다. 시커먼 먹물을 머금은 솜뭉치 같은 먹구름을 머리에 이고 촉촉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둘러앉아 귀신이야기를 꽃피우던 그때를 데려온다. 처음 찾은 부석사가 물안개에 휩싸여 신비롭게 자태를 드러냈을 때 모두 한 마음으로 감탄을 내뱉던 그 순간을 데려온다. 노란 운동화를 맞춰 신은 친구들과 빗길을 걷고 또 걸어 도착한 용궁사의 위용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그날을 데려온다. 장마는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순식간에 그날의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이제는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화면이 끊어지고 번져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6월의 마지막은 장마가 매달고 오는 나의 추억들로 점을 찍어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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