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FAC Dec 28. 2020

서른이 뭐라고

혼자 보내는 주말

서른이 뭐라고.

으른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서른.

요즘 부쩍 한숨이 늘었다.

이제 곧 기획자로서 3년 차가 되는데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물건을 갖고 싶다.

서른인데 29년 동안 나는 어떤 걸 해내고 이루었을까?

2020은 특히나 더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만 서른. 진정 서른 살을 지낸 한 해.

코로나로 인해 타격을 많이 받았던 해.

코로나가 없는 세계와 있는 세계는 아예 달랐다.  


갑자기 적어 내려 가는 AE 하면서 화났던 일들.

-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일

- 광고주 비위 맞추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일

- 팀원들이랑 커뮤니케이션하는 일


어언 2년을 꽉 채어가는 지금.

내가 입사했을 때 있었던 직원의 95%가 바뀌었다.

그만큼 퇴사율이 높다는 의미겠지.

일은 많고 월급은 짜고. 선임이 없고 시스템이 없다는 점 때문에 나간 경우들이 많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고 내 심장은 쿵쾅거렸다.

멘털 체계를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강심장이 되어야 한다.

이 유리 같은 감정을 어떻게 탄탄하게 할 것인가.

회사 내에 기류가 변하기 시작한다.

나는 버틴 것만으로도 위치가 올라가는 괴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뭐랄까...

서른이라는 나이는 조금 다소 어려운 나이이다.

왠지 철이 들어야 할 것만 같고 이제는 허튼짓을 하면

손가락질을 당할 것 만 같다.


만서른의 나는 지금 새빛 섬 한강공원에 와있다.

원래 있던 올라 레스토랑은 isola라는 다른 식당으로 바뀌어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달라지는 공간들을 보면 가끔 씁쓸할 때가 있다.

오늘 코로나로 인해 좋은 점 하나를 애써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유명 디저트 집에서 웨이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착석이 안되기 때문에 다들 테이크 아웃해서 나가기도 하고, 훨씬 솔드아웃될 확률이 낮다.

한강은 늦은 오후에 오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덜 춥고, 차 안이 밝아서 더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그리고 요즘은 어둠보다 빛이 좋기도 하고.


멀리 가보려다가 내 상태를 보아하니 그걸 버텨내기에 힘이 붙일 것 같아서 

한강에 왔는데 아주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똑같이 내가 좋아하는 흐르는 강이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5시가 되니 노을 지는 것 까지 볼 수 있었다.

일거양득.


어릴 땐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 대접을 받고 싶지만,

막상 어른이 될수록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심리는 무엇일까. 

어릴 땐 어른이 되고 싶어서 누군가 나를 어른처럼 대해주면 기분이 좋았고 그 사람을 좋아했다. 

뭔가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애처럼 대해주면 은근 기분이 좋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기분 좋다. 

그것도 참 묘하다.


대상포진을 앓고 나서 정말 괴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해서 잠도 계속 설쳤다.

잠을 설치지 피곤이 가시지 않고 누적이 되었다.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내가 입맛이 떨어졌다. 


몸이 아프니까 나는 지금 뭘 위해 살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른. 그 기로에 서서, 나는 잘 가고 있는 건가. 


한강에 오니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그 점도 흥미롭다. 

저마다 인연을 만나서 결합이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짧은 인연, 긴 인연, 나쁜 인연, 좋은 인연...

코로나의 상황 속에 그런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어떠면 지금은 그것 없이는 버텨내지 못하는 시기이니까. 

가족. 결혼. 그것은 아직 감이 잘 안 온다.

뭔가 아직 그러고 싶지 않은 기분? 심리? 결정?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기에.

뭔가 나를 포기할 수 없기에.


아프다. 아프다. 어떡하지.

옆에서 그냥 꼭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점심으로 1 밀푀유, 1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를 먹었다. 

그냥 달달함으로 위로를 받고 싶었던 날.


5:30분이 되니까 건물의 빛이 찬란하게 드러난다.

해에 가려서 안보이던 빛들이 밤이 되자 빛을 밝힌다.

가족들, 연인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이 곳에서 나도 적지 않은 기억들이 많다. 대부분이 전 남자 친구와의 추억이지만.


써머 85.

 

어쩌다가 영화를 공짜로 보게 되었는데 주차비가 7천 원이 나와서 그냥 영화를 사서 본 것이랑 똑같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냥 지금 불가능해진 해외여행을 영화로 느끼고 싶었다.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풍경, 햇빛, 그런 찬란함을 스크린으로라도 느끼고 싶었다. 

다소 어두운 감성이 뒤섞여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주인공의 몸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일까...? 

이것도 서른의 나이에 찾아오는 변화일까 생각도 든다. 

전에는 정말 얼굴 위주로 봤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외의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좋았던 장면들은, 주인공 두 명의 아름다운 연애 장면들. 

특히 날씨 좋은 날에 하는 둘만의 요트 데이트는 꼭 해보고 싶다.


차가 있어서 좋다. 나만의 붕붕이. 나를 어디든지 데려갈 수 있는 나의 발. 

차가 없었다면 나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생활을 못 견뎠을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치유방법이 있는데, 나는 그것 중 하나가 드라이브다. 

내가 좋아하는 곳들을 하나씩 가 보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떤 식으로든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어제 백화점에 가서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갑을 사주셨다.

서른 살에 선물을 받으니까 좀 민망한 감도 없지 않았다.

나의 선택 장애는 또 여기서 발현이 되어서 정말 한 참의 고민 끝에 결국엔 처음에 생각하지도 않은 디자인을 구매를 했다. 다소 복잡한 구성이지만 신상이라는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그리고 뭐, 또 돈 벌어서 다른 것 구매하면 되니까 라는 생각. 

하지만 이 작은 지갑 하나의 가격이 너무나도 커서 사실, 나이 때문인지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집에만 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티브이만 보고 싶다. 

이렇게 혼자서라도 밖에 나와야지 그나마 뭐라도 하게 된다. 

하다못해 움직이기라도 하니까. 

글도 더 잘 써지고. 다만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나의 붕붕이 안에서 글을 쓴다. 

반짝이는 밤의 한강을 바라보면서 쓰니 운치가 있다. 이것을 추천해준 직장 동료에게 감사를 표한다.

취향이 맞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세상에 좋은 것들은 많고, 그중에 어떤 것은 돈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열심히 해야지. 

아니 똑똑히 열심히? 해야지. 지금 내 주변에 보이는 높은 고층 아파트들도 포함이다. 

그래도 오늘 할 일을 다 해서 기분이 좋다. 마지막 남은 건 사실 네일 하는 것과 일기를 쓰는 것.

프렌치 네일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왼손은 괜찮은데 오른손이 챌린지이다. 

그렇게 주말을 알차게 보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조제’를 보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