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소 내게 슬픈 하루였어.
서글픈 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까?
오늘은 일에 먹혀버렸어.
일이 나를 잡아먹어서 먹어버렸어.
보통 페이스를 잃지 않을 정도였는데, 오늘 업무는 그게 아니었지 뭐야?
그런 와중에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왜 일까,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어.
오랜만에 회사 밥을 먹으려고 옆에 있는 샐러드 집에 갔어.
굉장히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오픈 키친을 보면서 저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살짝 궁금해지지만 이내 나 자신에게 관심이 되돌아왔어.
내가 시킨 닭가슴살 아보카도 샐러드를 결제하려고 보니까
회사에서 저녁 식대로는 8천 원 밖에 지원이 안돼서 나는 10,900원을 두 카드로 나눠서 결제했어.
그러면서도 괜히 왜 이렇게 쪼들려 보이는지.
음식 비주얼은 굉장히 좋았는데 이상하게 식욕이 생기지 않았어.
미드를 틀어놓고 애써 집중해보지만 계속 기분이 바닥 끝까지 다운된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어디로 들어가는 건지 모를 정도야.
기분이 나빠서인지, 배가 안 고파서인지, 음식을 그냥 목구멍으로 넘겼어.
체하는 건가? 이때부터 속이 불편하더라고.
회사에 다시 복귀했는데, 기존 퇴사자가 왜인지 돌아와서 휘젓고 다니고,
회의실에서는 회식을 하고 있어서 분위기를 흐려놓더라.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사람들 그 사이에 내가 있었어.
혼자 있었는데 문득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생각이 들더라?
내가 자초했을까 이 상황을. 왜일까? 변해야 할까?
미친 듯이 못 견디겠어서 마무리하고 퇴근을 하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가방은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지.
9시에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오니 10시.
집안은 정적이 돌더라.
엄마, 아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적이 싫어서 얼른 방 안에 들어와 버렸어.
집 전체가 침묵하고 있었어.
모든 물건들이, 컵도 접시들도 침묵하고 움직이지 않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빨리 오늘의 안 좋은 에너지를 씻어 내 버리고 싶어서.
며칠 간 묵은 때를 박박 벗겨 내고 싶어서.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았어.
물 흐르는 소리조차 오늘은 조용하더라.
몸을 담그니 온몸이 살아있는 듯 반응을 하며 뜨거워져.
반신욕을 하면서 '아비정전'을 틀었어.
그 음침하면서 관능적이며 위험하면서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좋았어.
꾸며지지 않은, 화면을 뚫고 나오는 장국영의 눈빛과 바이브.
반신욕 15분을 하고 나니 이마에 땀방울이 비 오듯이 뚝뚝 떨어지면서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며 그 땀으로 오늘의 나쁜 기운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어.
샤워를 하다가 오늘 썼던 면 마스크를 비누로 벅벅 빨면서 때밀이를 그것과 함께
힘차게 짜는데 모든 바이러스, 안 좋은 기운들이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기분이 나아지더라. 그 검은 기운이 하얀 비눗물과 같이
흘러 내려갔어.
그러고 나서는 소화가 안된 배를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나의 팔, 다리를 오리가 물속에서 미친 듯이 헤엄치듯 움직였지.
먼저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들을 옷장에 정리해서 넣었어.
계속 느끼는 거지만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정말 큰 옷장을 가지고 싶어.
옷들을 정리하고 나서 머리카락을 슥슥 쓸어서 쓰레기통에 넣으니까 마음이 좀 깨끗해졌어.
그러고 나서는 하루의 마무리는 반가운 목소리와 하루의 근황을 나누면서 마무리했지.
뭔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이렇게 힘이 되는 건지 새삼 깨달았지 뭐야.
기분 좋은 말 한마디. '여자로 본 다는 말'. 장난꾸러기 같은 말투.
이제는 뭔가 세상을 너무 진지하게 보고 싶지 않아.
이미 팍팍한 세상에 단비 같은 스윗함과 장난스러움은 필수적인 존재 같아.
그렇게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