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혼자 있기 싫은 날

by LOFAC

왜 그런 날 있잖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취해서 잠들고 싶은 날.

그저, 누군가와 함께 술 한잔 기울이고 싶은 그런 날.

도저히 오늘은 맨 정신으로는 안 되겠어서.

못 견디겠어서.

술과 함께 하루를 견뎌내고 싶은 날.

그런 날이 오늘이었어.

욕해도 좋아, 무시해도 좋은데,

그래도 나는 오늘 하루를 잘 견뎌내었잖아.


오늘 나름 기쁜 일도 있었다?

오후 두시반에 오늘은 일찍 퇴근하라는 팀장님의 단체 깨톡이 와서 기분이 좋아졌어.


그때부터 소화가 안되고 체기가 있던 것도 한 번에 내려가지 뭐야?

몸이 그렇게 솔직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


나는 잘 모르겠어. 지금 만 서른 살.

아직까지 내가 뭘 갈망하는지, 원하는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그런데 있잖아, 그거 알아가는 재미로 사는 거 아니야?

그거 다 알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

그래서 오늘은 아무나 잡고 넋두리를 늘어놓고 싶었어.


아무 의미도 없어도 좋으니까.

그냥 내 말을 귀 기울여서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어.

거기다가 술과 맛있는 음식을 곁들이면 더 좋겠지.


그래서 우선 오늘 무조건 약속을 잡았어.

사실, 그렇게 당기는 약속은 아니었는데,

오늘 같은 날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약속을 나가려고 하는데 웬걸? 택시가 안 잡히네?

한 참을 안 잡혀서 다른 위치로 택시를 부르니 그제야 잡히는 택시. 사실 잠깐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지.


그렇게 성수동에 힘겹게 도착했어.

사실, 내가 너무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15분 늦은 거 치고는 너무 정색하는 지인을 보고 살짝 정이 떨어지더라고. 내가 극심히 예민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내 안에 여유가 없단 걸 수도 있고.

그래서 나름 나도 최선을 다해 사과를 했지만 먹히지 않는 느낌을 받았지.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 주문을 하려고 메뉴를 봤는데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 사실 오늘 내가 진짜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거든?

역시 나는 해산물 파인가 봐.


메뉴 고르는데 최선을 다하는 나이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었어.

그래서 알아서 시키게 내버려 두었지.

지인이 집에서 와인을 가져왔더라고? 그래서 와인을 개봉하고 마시지 시작했지.


이윽고 거대한 티본스테이크가 나왔는데,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더라. 신기하지?

그렇게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연신 와인만 홀짝거리면서 목 뒤로 넘겼어.

음미하지도 깊은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그저 그 순간이 지나가게 와인을 마셨어.

오히려 같이 있는 지인보다, 매니저 혹은 사장처럼 보이는 직원에게 더 관심이 갔어. 왠지 모르게 마스크 뒤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어.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플레이트랑 조명을 알아서 세팅해주고, 룸이 있는데 거기로 옮겨도 된다고 해서 기분이 좀 나아졌어. 나는 천상 이런 공주 대접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나 봐. 이래서 연애가 힘들까?


그렇게 지인은 예전 여행담을 늘어놓는데,

여행 계획표를 엑셀로 짜 놓은걸 보고 살짝 충격을 받았어. 왜? 거기에 매일 어떤 옷을 입을지 까지 플랜을 짜 놓았더라고. 그런 사람은 처음 봤거든.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그제야 내 속 이야기를 시작했어. 역시 알딸딸해지면 사람이 좀 더 마음이 넓어지나 봐. 그제야 눈을 보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거든.


어느덧 가게 마감시간인 9시가 되어서야 좀 입이 풀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택시를 꽤 오래 기다리던 와중 클라이언트한테 메시지가 왔어. 내일(휴일)까지 견적서를 보내달라는 메시지. 아마 이때이지 않았을까 싶어. 내가 이직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택시로 집 앞까지 데려다준 뒤 집에 들어갔어.

역시 집은 차갑고, 조용하고, 싫었어.

통화하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오늘은 어렵다고 해서 뭘 할까 하다가 한 잔 하면서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고 중국 영화를 틀어놓고 화요 토닉을 마시다가 잠에 들어버렸어. 그걸 원하기도 했었지.

그렇게 술로 잠을 청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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