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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AC Oct 01. 2021

다시 찾은 제주

제주의 중독성

이쯤 되면 제주에 중독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제주에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흘러간다.

서울에서의 미친 듯이 바빴던 시간이, 제주에서는 천천히 흘러간다. 제주에서는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사람에 대해 첫인상이 지나가고, 그다음에 봤을 때 인상이 바뀌고, 그리고 한 번 더 봤을 때 계속해서 달라진다.


제주의 첫인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감정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제주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변덕스럽지만, 사랑스러울 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하루는 정말 하늘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맑고 푸르르다가 다음날에는 비바람이 몰아쳐서 얼굴을 적신다.


이번에도 두 가지의 얼굴을 보여줬다. 첫 3일 동안에는 날씨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뒤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는 정말 거세게 들이쳤다. 심지어 잠을 거의.  못 잘 정도로 파도소리가 거셌다. 얄궂기도 했지만, 어쩌겠어 이렇게나 제멋대로인데.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이번에는 정말 계획을 짜지 않았다. 그저 몇 군데 가고 싶은 데만 리스트를 놓고서는 그날그날 끌리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여기서는 뭔가 해야 해야 되는 강박증이 없어진다. 서울에서는 쉼 없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강박증이 있었다. 아니. 생긴다. 지금 혼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더 느낄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수많은 시간들을 제주에서 보냈지만 되돌아보면 생각나는 것은 소소한 시간들이다.

카페에서 소박하게 책을 읽은 시간. 글을 써 내려간 시간.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던 시간.


그러던 와중에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었다.

법인카드로 사용했던 회사 비용이 입금된 것.

원래 내 돈이긴 하지만 이렇게 들어오니 공돈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요즘에는 ‘민낯’이 좋아졌다. 뭔가 부자연스럽거나, 흉측하거나, 꾸며진 것이 싫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사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멋이 진짜 멋으로 느껴진다. 흐트러진 잔머리, 눈가의 미세한 주름, 자연스럽게 툭 걸친 가디건 같은 것.


이번 여행은 퇴사를 한 지금 내게 꼭 필요했던 시간.

제주는 언제나처럼 나에게 힐링을 주었다. 제주의 진짜 멋은 제주의 골목길. 또는 내륙에 있는 소박한 카페가 아닐까. 물론 해변가의 멋들어진 카페들도 좋지만, 그런 곳에서는 오래 있어지지가 않더라. 사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 매번 책이나 노트를 들고나가도 그대로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20대에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어떻게 보일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할지에 대해서 날마다 고민하고 거울을 봤다. 지금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떤 게 더 중요한 건지 조금은 깨달았다.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하는 것.

어쩌면 지금까지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산 것은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것, 취향, 남자, 이상형, 꿈 등 내가 진정 좋아해서 좋아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아했던 건지.


서글퍼지는 것은 연애를 하면 할수록, 그 신선함이 덜해진다는 것이다. 처음 ‘했던’ 느낌과 이미 했던 것을 ‘또’ 하는 것의 차이랄까. 문득문득 떠오르거나 하는 것이 어쩔 수 없으니까. 나라는 사람에게 하나하나 각인이 되어버렸으니까.


나는 지나치게 혼자 잘 다닌다. 그냥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지나치게 팬시한 레스토랑이나 술집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ritual 몇 가지가 있다.

리스트병

혼자병

카페병

빵병

메모병

문구병

맛집병

여행병

...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이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병을 다 하나둘씩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는 -


리틀 포레스트

해리포터

어바웃타임

노트북

위대한 개츠비

라라랜드

비긴 어게인

금발이 너무해

미스 에이전트

레옹


새로운 카페를 찾았다.

골목 카페 옥수라는 곳.

가게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사뭇 불안한 마음으로 도착한 이 카페. 오늘 벌써 두 번째 카페인데, 약간 물리기 시작한다. 총 아메리카노 2잔, 청귤 티 한잔째.

첫 카페에서는 참 많이도 시킨 게, 아메리카노2잔, 애플 팬케이크 한판까지 먹어서 거기서 거의 점심을 때웠다. 점심 두 끼 먹 은꼴이다.

느글느글해서 저녁에는 좀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싶어졌다. 원래는 바닷가에 있는 바에 갈까 생각도 하다가 술을 먹지 못하는 바는 좀 아닌 것 같아서 선택지를 보류했다. 찾으면 찾을수록 갈 곳이 속속들이 나오는 제주.


이 카페는 고즈넉하면서도 나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곳이다. 비 오는 날씨랑 잘 어울리기도 하고.

리틀 포레스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배가 꺼지지도 않았다. 활동을 거의 안 하기도 했고, 차로 이동하니까 움직일 일이 거의 없다.

여기 와서 정말 그냥 먹고 자고 하고 있는데 사실 그거 하고 싶어서 제주에 온 거긴 하니까.


‘골목카페 옥수’에는 원래 에그타르트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사실 지금 느글거리는 배에는 더 이상 디저트가 들어갈 수 없다. 디저트 빠순이 나로서도 그건 좀 힘들다. 한국인의 피는 어쩔 수 없는 걸까.

호텔 생활이 살짝 지루해진다. 호텔을 아무리 좋아하는 나로서도 호텔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 특유의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여행은 참 신기하다. 평소에 관심 갖지 않았던 것을 눈에 들어오게 해 준다. 제주도민인지, 여행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일 카페에 올 수 있는 특권은 매우 소수에게만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그간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에그 타르트는 바로 먹지 않으면 그 식감이 상당히 불쾌해진다. 바삭바삭할 때 만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만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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