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왕십리동
카페에 가면 내가 즐겨하는 액티비티가 몇 가지 있다. 그래서 나는 카페에 가는 게 여느 놀이보다 재밌다. 그중 한 가지는 책 읽기. 책에 오롯이 빠져보고 싶은 날 나는 시적인 커피로 향했다. 근처에 볼일이 있기도 했고 작고 조용한 북카페에 가고 싶기도 했던 아직은 쌀쌀했던 날. 오픈 시간 12시에 맞춰서 도착했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근처에서 서성거리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픈 시간 12시간이 되니 카페 사장님이 카페 문을 여신다. 서둘러서 카페 안으로 옮겨서 창가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더 작고 코지한 분위기의 시적인 커피. 나는 카페 이름에서부터 이곳에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카페 이름에서부터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 카운터로 가서 블렌드 커피와 브라운 치즈 토스트를 주문하고 다시 카페 내부를 찬찬히 눈으로 훑어 내려갔다.
아직은 낯선 공간이지만 편안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공간. 벽면에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적어 내려 간 메시지들과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손님들의 카페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왔다. 그만큼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 나도 카페 한편에 준비되어 있는 메모지와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앉았던 자리 옆에는 책꽂이에 책들이 쭉 꽂혀있었고 나는 끌리는 책들을 하나씩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때 읽었던 책이 바로 '채식주의자'다. 어찌나 흥미롭고 강렬하던지 앉은 그 자리에서 완독 해버렸다. 소설인데 이렇게 빨리 읽은 책은 채식주의자가 거의 처음인듯하다. 사장님께서 천천히 드립을 내려주시니 작은 카페 공간에 고소하고 달큰한 커피 향기가 가득 퍼졌다. 작은 카페의 매력을 다시 느꼈던 시간. 이윽고 사장님께서 자리로 브라운 치즈 토스트와 드립 커피를 가져다주시고 나는 잠깐 동안 커피의 향을 맡으며 올라오는 커피의 김을 느꼈다. 점심을 안 먹은 터라 토스트와 커피는 가벼운 점심으로도 적당했다.
먹어본 메뉴
브라운 치즈 토스트
핸드 드립 커피
그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토스트와 커피잔이 비워졌다. 한 잔을 더 시킬까 고민하던 찰나에 사장님께서 지금 함께 마실 드립 커피를 내리는 중이었다고 말하셨다. 순간 설렘과 함께 기쁨이 몰려왔다. 예기치 못할 때 이런 특별함이 생길 때 기쁨은 배가 된다. 그렇게 또 다른 맛의 드립 커피를 마시며 책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이곳에서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큰 영감을 줬다. 책을 읽다가 창가에서 들어오는 오후의 햇볕의 그림자를 감상하기도 하고 메모장에 연필로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순간의 생각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이곳은 사장님의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공간이었고 큰 사랑이 담겨있는 공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행복감도 카페에 충만했다.
이곳에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오후가 지나 저녁 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테이크 아웃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거의 단골손님같이 보였다. 사장님은 손님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편하게 나누었는데 마치 일본 드라마에서 너그러운 카페 사장님과 같은 모습이었다. 작은 카페의 매력이 이런 것 아닐까? 어쩌면 사장님은 사람과 책 그리고 커피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일 것 같다. 이 공간은 카페에서 조용하게 책을 읽고 싶을 때 또다시 방문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