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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AC Jan 26. 2019

연초에 다들 어떠셨나요? -1

취준생 그리고 진로탐색 라이프

어느덧 2019년도가 되고 처음에 2019년이 되어도 날짜를 쓸 때 계속 2018을 썼다가

지우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을 것 같다. 

나 또한 2019라는 숫자가 너무나도 어색했으니까.

2019년도의 플래너의 첫 장을 넘기니 그제야 실감이 조금 난다. 

2019년 1월이 끝나가는 지금 여러분께 묻는다.


당신은 2019의 첫 스타트를 잘 끊으셨나요?

나 같은 경우에는 이상하리 만큼 일이 잘 풀리고 있다.

마의 아홉수를 넘어서 그럴까?


20대 때는(이 말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아직 만으로는 20대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중이다) 솔직히 생각이 없었다. 

아니 생각이 너무 많았다. 

하고 싶은 건 많고, 중심은 없고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서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때그때 다 했다. 

돈도 있으면 쓰고 싶은 곳에 쓸 수 있을 만큼 다 썼다.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내 젊음도 한정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어른'이라고 불리는 20살에서 30살까지는 평균 수명을 고려해 본다면 너무나도 짧고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고, 그때그때 충실하게 살고자 했던 것 같다.




취업 & 진로탐색


취업준비를 하면서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았다.

서류, 면접, 시험, 최종면접 등등 취업에는 절차가 상당히 많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은 진입장벽을 경험해본 것이 취업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내 성격이 조금 급한 것도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취업이라는 수많은 과정들(회사 검색, 리서치, 비교, 이력서 작성, 자소서 작성, 면접, 시험 준비, 

최종면접, 신체검사 등)을 다 할 만큼의 참을성이 있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원하는 곳에서 빨리 일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아니 지금까지 그 취업 과정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래서 내 사업을 차리는데 큰 요소 일정도로 그 과정이 싫었다.


직원을 뽑을 때는 전문성이 필요한 포지션에는 외에는 이력서와 면접 그 두 단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과정으로 인해 많은 창의적인 인재들을 놓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업의 압박감은 이력서를 작성하면서부터 온다. 

같은 문항들이 대부분이지만 그걸 작성하고 싶으면 뭔가 나라는 사람이 아닌 상품 소개를

작성하는 것처럼 느끼는 기분이 싫었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미래에는 이런 이력서 작성이 없어지지 않을까? 이런 기계적인 데이터 작성에 시간을 버리지 않고

나라는 사람의 데이터가 정리되어 볼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올 것이다. 


하지만 면접이라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면접자는 면접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있다. 나를 어필하는 방법, 커뮤니케이션하는 법, 말을 설득력 있게 하는 법. 그리고 나에 대해서 더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최근에 아니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 탐색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나는 뭘 잘할까. 나는 뭘 좋아하는가. 

가장 큰 초점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였다. 

무조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업으로 삼고 싶은 게 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나도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 만 하는 고집이 있어서 생각이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웃을 수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몰라? 라며.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해보기로 했다.

다 해보고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첫 번째 선택 - 발레



그래서 내 의지로 처음으로 도전했던 꿈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한 발레다.

초등학교 때 발레를 배웠고, 무대에도 몇 번 서면서 발레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엄마 손을 잡고 예술의 전당에 가서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며 아름답고 청초한 발레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내 마음속에 강렬한 생각이 들어왔다.

"나는 발레리나가 될 거야"라고.

어렵게 아빠를 설득했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다.


본격적으로 입시 발레를 준비하기 위해 지인의 소개를 받아 성신여대에 위치한 소규모 발레 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하철도 거의 안 타본 중학생이 방과 후 한 시간 거리인 성신여대를 매일 통학했다.


첫 번째 고비 - 노출

처음에는 너무나 민망하고 창피한 마음이 컸다.

중2면 소위 중이병이라는 반항기이기도 하고 몸매가 전부 노출되는 타이즈에 레오타드를 입는다는 것부터가

내게 첫 과제였다. 

평상시에 톰보이라고 불릴 만큼 몸에 붙는 옷을 입지 않는 나에게는 정말 어색했다. 

가슴라인이 드러나고 다리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발레복을 매일 입어야 했다.


두 번째 고비 - 다이어트

매일매일 다이어트와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보통 체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른 체형으로 가기 위해 입시 전 5kg를 빼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매일 낮과 밤으로 체중을 재며 압박을 받았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체중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고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줬다. 

당시에는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도 알지 못해서 체중이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세 번째 고비 - 비교

입시학원에 들어가서 처음에 아예 발레의 기초부터 배워야 했기 때문에 초등학생 친구들과 함께 레슨을 받았는데 인형 같은 이목구비와 체형을 가진 수강생을 보고 계속해서 나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나보다도 어린데 훨씬 유연하고 동작도 쉽게 쉽게 하니까 상대적으로 위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것이 당시에 중학생인 나는 초등학생들과 수업하다 보니 내가 굉장히 나이가 많고 노땅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비교의 엄청난 폐해를 실감한다. 아기 같은 중학생을 노땅으로 생각되게 하는 비교라는 함정. 

비교를 시작하니 그것은 점점 더 나를 조여왔다. 반항심이 한창 차오른 시기라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뒤쪽에서 대충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안 봐줄까 봐 일부러 더 못해서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어린 생각을 했었다. 


수개월 뒤 동갑내기 친구가 학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친구도 나처럼 발레를 처음 시작하는 아이 었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는 또 한 번 위축이 되었다.

그 친구는 워낙 애교 있고 싹싹한 성격을 가지고 선생님들에게도 잘해서 이쁨을 많이 받았다.

나는 무뚝뚝하고 남자 같은 성격이어서 그런 면에서 그 아이가 참 부러웠다.

얼굴도 작고 몸도 가늘고 작아서 발레리나 하기에 좋은 체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키도 크고 뼈대가 작지 않아 보여서 스스로 계속 비교를 했다.


네 번째 고비 - 예고 진학

예고 입시에 성공하고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그 안에서 너무 많은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났다. 

기싸움부터 시작해서 선후배 간의 텃세, 선생님들과 라인 타기 등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건 선배들의 텃세다. 그런 시스템?을 처음 접해봐서 충격인 것도 있었지만 

말로만 듣던 예고 텃세를 실제로 겪어보고 실감했다. 

첫날부터 찍혀서는 사소한 것들로 핀잔을 받았다.


예고를 가서 처음으로 무한경쟁 사회를 경험했다.

매일매일이 경쟁이었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어디에 설지 등 모든 게 치열한 경쟁이었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음식을 먹을 때도 서로 얼마나 먹는지 눈치 싸움을 하며 먹으니 편하게 먹을 수도 없었다.


특히 가장 큰 어려움은 여기서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나처럼 1년 준비해서 예고에 진학한 학생이 같은 학원생이었던 친구 말고는 없었다.

다들 실력이 나보다 좋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준비한 학생들이었다.


그때 배운 것이 이런 경쟁이 심한 상황을 내가 못 견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매일 평가를 받는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컸다. 

또 그런 마인드 세트에서 매일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기분이 마치 동물원의 놀림감이 된 기분이 들었다.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얼마 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국 최고 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소속 발레리나 선생님께 레슨을

받기로 했다. 보통 학교가 끝나면 전공 레슨을 하기 때문에 5시쯤 끝나는데 레슨은 밤 10시에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완전히 새로운 레슨을 접하게 되었다. 

기존 발레 학원에서 배우지 못한 기술들을 알게 되었고, 몸을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이제껏 그냥 몸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내 몸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학교 전공 시간에 선생님께서 훨씬 좋아졌다고 바로 알아보셨다. 

하지만 내 만족감은 그 상태로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혔다. 

바로 내 체형이 발레리나로 활동하기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다리가 올라가지 않는 구조였고, 납작한 가슴을 가진 발레리나들과는 달라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그래서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수차례 한 뒤 결정을 내린 뒤 인문계로 전학을 결정했다. 

나의 첫 번째 꿈이었던 발레리나는 이렇게 좌절되었지만 도전해봤고, 노력했기에 후회는 없다.

그 안에서 많은 배움도 있었다. 

나에 대한 이해, 스트레칭 및 발레에 대한 이해와 지식, 꿈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배웠다. 

그리고 발레리나가 우리가 보는 무대에 서기까지의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알기에 발레 공연을 볼 때 

더 많은 감정을 느낀다. 


발레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예고 입시 준비를 위해서 콩쿠르 출전을 했을 때였다.

머리를 올리고 진한 무대 화장을 하고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튀튀와 새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올라가서 오직 나를 비추는 조명과 나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음악을 기다릴 때였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발레를 하는 꿈이 종종 나온다. 


이지수 

jlee@lofac.co.kr

insta @lofac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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