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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날이 좋았다.

by 로파이


서울에서 전 직원 대상 교육이 끝나고 직원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달이 너무 이쁘게 떠있었다.


- 팀장님 달이 떴네요?

"네? 달요? 오늘은 달 보여요?"


- 예. 엄청 예쁘게 떴네요

"아. 그러네 진짜네 어제는 보이지도 않더구먼"


- 어제 달 보이지 않으셨어요? 저는 봤는데?

"그래요? 안 그래도 달 떴다고 알려줘서 나갔다가 어제 한 시간을 걸었는데 안 보였는데"


- 오늘 실컷 보시면 되겠어요 ㅎㅎ

"그러게요 되게 밝고 예쁘네요"


집에 돌아가자마자 옷을 갈아입고서 바로 밖으로 나와 최근 자주 찾던 이자카야로 향했고

사람들로 가득했던 매장 안에 홀로 앉아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매장 혼술을 하기로 했다.

소주 한 병을 30분 만에 해치워버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밤에 산책을 했다.


"해냈다. 혼술"


DSC02440.jpg


달이 어찌나 밝고 이쁘던지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글픔이 찾아왔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항상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사는 게 힘들거나 고되거나 외롭거나 쓸쓸할 때 항상 달을 보며 기도를 했다.


"너는 날 참 오래 봤을 거야 그렇지?"

"내가 얼마나 널 보면서 기도했는지 너도 알 텐데 너는 단 한 번도 내 기도는 들어주지 않더라?"

"쫓겨나서 내가 제발 도와달라고 울며불며 이야기했을 때도"

"옥상에서 부탁이니 한 번만 숨통 좀 트이게 해 달라고"

"내 차례는 대체 언제 와..?"


"염치없이 또 기도하는 건데 좀 도와주라.. 진짜 숨을 못 쉬겠으니까 좀 도와주라 응?"

"내가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터벅터벅 걷다가 하늘을 보고는 중얼중얼 이야기하다가

앉아서 하늘 보고 중얼중얼 이야기하다가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내 목소리는 닿지도 않았을 건데..



다음날은 몹시도 눈이 부시게 날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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