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마냥 기쁘지 않은 명절

파인더로 보는 세상

by 로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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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다.


이런 큰 명절이 있는 날이면 유독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와 동생은 할머니께서 키워주셨다.

연세가 적지 않으신 우리 할머니는 본인의 자녀를 할아버지 없이 홀로 아들 셋에 딸 둘이나 훌륭하게 키워내신 위대하신 어머니셨다.


이제는 쉬셔도 되셨을 텐데 책임감 하나로 손주 둘을 키우시게 되셨으니 쉽지 않은 선택이셨을 것이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을 희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


그 시절의 할머니는 하루도 쉬지 않으셨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성당에 새벽기도를 가셨고, 인근 파출소에 출근하셔서 경찰분들의 밥과 반찬을 해주셨다.

해가 지고 달이 뜰 때 즈음이면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할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리면

양손 가득 반찬과 밥을 들고 우리를 반겨주신다.

저녁을 함께 먹고 난 뒤 할머니는 잠이 들 때까지 묵주를 들고 기도를 하셨다.


쉽지 않은 반복된 삶

얼마나 부서져라 지내셨는지 옆에서 나는 분명 보았다.


큰 명절이 오면 할머니는 아들과 딸들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시곤 했다.

그날만큼은 그간의 설움을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쏟아놓으셨다.

왜 먼저 갔느냐고, 왜 당신 먼저 가서 이런 고생을 시키느냐고, 나도 데려가라고 목 놓아 우시는 날이 일 년에 두 번 있었다.


할머니의 아들 그리고 딸들은 내 할머니가 엄마였다.

본인들의 엄마가 이렇게 고생하시는 이유는 결국 우리였다.


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자 = 나, 우리


왜 할머니를 힘들게 하느냐?

네 친척 형을 봐라, 네 친척 동생을 봐라

너희들은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생각해 보면 그날은 꼭 꾸중과 욕을 먹어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점점 이런 명절이 겁이 나고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명절을 의도적으로 참석하지 않았으며,

홀로 할아버지 산소에 가거나 조용히 명절을 보내곤 한다.


"옛날일을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피곤하게? 이미 다 지난 일인데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 이런 큰 명절을 기피하고 숨고 싶어 하는 게

몸에 배어버려서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산다.


하지만 나도 기쁘고 설레고 기다려지는 그런 명절을 가끔은 그려보기도 하고 그런 꿈을 꿈에서나마 꾸기를 바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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