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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Mar 16. 2021

어디 재미있는 거 틀어봐, 좀 웃게

얼마 전우리 엄마는 은퇴를 하셨다.

요새 우리 엄마의 입버릇이다. "어디 재미있는 거 좀 틀어봐." 아, 재미있는 게 보고 싶으신가 보구나. 싶을 때 뒤따라 붙는 말이 나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든다.


좀 웃게.


좀 웃게 재미있는 예능을 틀어보라는 우리 엄마. 얼마 전 우리 엄마는 은퇴를 하셨다.






엄마의 은퇴.. 사실은 괜찮을 줄 알았다. 워낙 낙천적이시고, 아는 사람들도 많으시고, 오히려 일을 그만두시면 더 즐겁고 신나게 사실 줄 알았다.


근데 코로나를 깜빡했지...


다른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시고 일을 그만두게 되시면 더 신나게 지내실 거라 생각했던 우리 엄마는 코로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시고 점점 고립되셨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고, 누구를 만나려 해도 불편한 마음. 가끔 뒷동산으로라도 산책을 다니시던 엄마는 어느 날부터는 산책마저 가기 싫어하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은퇴도 자발적인 은퇴가 아닌 타의적인 은퇴였기에, 엄마는 더 힘들어하셨던 것 같다.


올해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


올해 60세, 체념했다던 그 말에서 나는 미련이 느껴졌다.

못난 딸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왜 그렇게 아쉬워하는데?" 하며 엄마의 가슴을 또 쥐어팠다. 엄마는 대답했다. "일을 못하는 게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제 이 나이까지 왔구나 하는 게 아쉬운 거야."


그런 엄마에게 나는 대꾸하지 못하고, "이거 한 번 봐봐"하며 재미있는 예능 모음집을 유튜브로 추천해줬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갔다.

지난 여행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엄마, 예능 프로를 볼 때만 웃는 엄마, 예능 프로가 재미없어질 때는 요리 유튜브를 보며 가족들 맛있는 반찬에 대해 연구한다는 엄마,


솔직히 괜찮아 보였지만 나는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엄마가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여행 사진을 보는 엄마는 그리워 보였고, 예능을 보며 웃는 엄마는 공허해 보였고, 유튜브를 보며 요리하는 엄마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애써 노력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엄마와 함께 있자고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었고, 새 학기로 인해 정신이 없어 퇴근 후에는 쓰러져 자기 바빴고,

그나마 주말에나 엄마가 가시고 싶어 하실 만한 곳에 모시고 가고는 했다. 맛있는 음식을 포장해가거나 엄마가 좋아하실만한 드라마나 예능을 찾아보고는 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엄마 스스로 시간이 필요했음을. 그저 이렇게 나이 먹은 당신이 마냥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듯 느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엄마 옆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무언가를 엄마가 부탁했을 때 내가 힘들다고 짜증 내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드리기, 내가 늘 엄마 곁에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시간이 될 때는 엄마와 함께 시간 보내기 등.



그렇게 지금 우리 엄마는 조금씩 새로운 일을 찾아보고 계신다.

배우고 싶으시던 것에 용기를 내고, 학원을 찾아보며 예능을 볼 때가 아닌데도 즐거운 눈빛을 내비치신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고 부족하겠지만,

이제 새 출발을 하는 엄마를 위해 더 노력하고 곁에 있어드리겠다는 다짐.


그 다짐을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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