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올레길을 걸으며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의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나의 숙소는 모두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도 이 길의 재미니까.
근데 내가 두번째 올레를 시작했을 때는 21년 11월, 코로나가 다시 재유행하던 시기였다.
고민만 하다 무엇의 취소도 없이 도착한 제주도의 첫 날. 올레길을 시작하기도 전, 생각지도 못하게 첫 숙소에서 많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보니 문득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함께 하다가 만약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지? 물론 백신도 맞았고 최대한 조심한다고 해도 혹시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만큼 그 누구의 얼굴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즐겁게 웃고 떠든 만큼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후회가 시작되었다.
안되겠다.
결국 첫 날의 숙소를 제외하고 나머지 예약해놓았던 숙소들에 대해 위약금을 지불하고서라도 취소하였고, 뒤늦게 혼자서 쓸 수 있는 숙소들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물론 만약의 상황이었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수도 있었지만 혹시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스스로 죄책감이 생길 것 같았다.
오랜만의 올레길로 행복했지만, 뒤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져 시작됐던 두번째 올레길.
다행히 둘째날 숙소는 나름 시내에 위치했기에 혼자 지냈음에도 숙소에 도착 후 산책을 하거나 바닷가에서 사색에 잠기며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셋째날이었다. 셋째날 도착할 곳은 위치상, 거리상 정말 혼자여야했으니까.
숙소도 여행객도 아무도 없던 동네. 그렇게 나는 혼자 신도리에 도착했다.
신도리에는 숙소도 많지 않았고 심지어 하루 전에 숙소를 예약했기에 예약 가능한 숙소조차 많지 않았다. 선택지가 없던 나는 결국 최대 6인이 쓸 수 있는 펜션을 혼자 예약하게 되었다. 셋째날 올레를 걸은 뒤 숙소에 도착하니 사장님께서도 혼자라는 나의 말에 당황하시며 안내를 해주실 정도였으니...
비싼 가격, 외로움, 후회,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많은 감정들에 휩싸이며 넓은 숙소에 짐을 풀게 되었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후회가 생기면서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자 싶었다!
후외와 자책이 섞인 신도리 숙소에서, 의외로 나는 무척 행복했다.
나의 세번째 숙소는 돌고래를 볼 수도 있는 바다멍이 가능했고, 찾아서 보러가던 일몰과 일출을 침대에 누워 양방향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내가 좋아하던 별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던 곳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는데 행복했다.
왜 행복한 지 이유를 생각하니 딱 하나의 이유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모르겠는데, 행복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나도 모르게 '아, 제주에 내려와서 살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너무 행복해서.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지.
이 숙소를 예약하면서 조금 더 멀리 생각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고, 후회했고, 질책했는데. 이 숙소에게 제일 행복할줄이야.
침대 창가에 앉아 하던 밭멍, 바다멍 그렇게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변경되는 순간에 대해, 조금은 미숙할 수 있는 나에 대해
'어쩔 수 없지! 이 순간을 즐기자!'하며 쿨하게 나아가자고.
물론 내 성격상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
그렇지만 후회하고 자책해봤자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앞으로도 그런 상황에 대해 조금 더 대비하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드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경험을 몸소 체험했으니, 앞으로 이러한 일에 대해서 나를 너무 다그치거나 자책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행복했던 그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