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Mar 12. 2020

나는 내 무기력이 싫었다.

죄책감을 갖지 말자,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최근 나는 무기력했다.

재미도 흥미도 없고, 열정도 사라진. 내가 하는 것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사실 이런 무기력함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어릴 적에는 공부와 입시, 성인이 되어서는 취업과 업무. 그 안에서 오는 크고 작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과도한 업무,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 문제 등. 그러한 크고 작은 문제들은.. 그래, 그 당시 내게는 심각하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크고 작은 문제들을 넘기며 견뎌내며 지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괜찮다고 생각하며 넘어가던 주위의 일들은, 조금씩 나의 마음을 갉아먹었고. 결국 나의 마음이 바닥났을 때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소진해버린 내 마음이 소리 지르듯.


몇 번의 무기력함의 반복은 그 무기력함을 대처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했다.

환경을 새롭게 바꾸거나, 친한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일들이나 내가 잘하는 것들을 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조금씩 나아졌다.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지냈다.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또다시 무기력함이 오면 알았다. '아, 내가 힘이 드는구나.'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지는 못했고, 결국 나는 또 그 무기력함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기력을 이겨낸다는 것" 자체가 나의 무기력함을 제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을 모두 소진하여서 조금은 쉬어가자며 소리치는 소리를 이해하고 들여다보려 하기보다는 '그래 알았어!' 대답만 하고 '그래도 얼른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 하며 닦달하듯 무기력함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했으니까.


있지, 무기력할 때는 내가 싫었다.

무언가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도 아지고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한 나에게 조금은 화도 나다가 안쓰럽기도 하다가 뭘 어찌해야 할지는 몰라서 우울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 죄책감이었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힘들 자격이 있나?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러는데.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고,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조그마한 일에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힘들거나 지쳤다는 생각이 들면 죄책감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럴 때가 아니야. 참을 수 있어." 하며 나를 닦달했다.


이 정도로 힘들다며 쉬기에는 누군가에게 괜히 미안함만 쌓이는 것 같아서.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미안해야 했다. 

힘들다고 소리치는 나에게 닦달하고 채찍질하기보다는, 안아주고 이해해주고 인정해야 했다.

힘들 수 있다고, 아플 수 있다고, 지칠 수 있다고. 쉬어도 괜찮다고.



앞으로는 나의 무기력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기력이 오거든 잠시 쉬어가려고 한다.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나중에는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될 거라고.

그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는 나를 기억하고 나 또한 무언가를 기억할 거라고. 절대 무의미하지 않다고. 그저 잠시 쉬어가는 것이라고. 누구든 쉬어도 된다고.


무기력이 찾아오거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안아주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해하지만 서운할 수 있잖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