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에서는 일출을 봐야 한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일수록 더더욱!

by YEON

처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적,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싶어서 정말 빡빡하게 일정을 짰더란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니까."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도시의 랜드마크는 물론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야경도 빼놓지 않았다. 늦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꾸역꾸역 구경했다.


그러다가 여행의 중반쯤 되었을까, 하루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우리를 안내해주시는 인솔자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우리보다 더 많이 이 곳에 오셨던 분이기에 기대감을 갖고 여쭤봤다. "피렌체에서는 어디를 가야 해요?" 그분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현지인만 알고 있을 법한 공원이라던가 서점, 음식점 같은 장소가 아닌 "피렌체는 아침이 아름답다."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

일출... 일몰이 아니라?

투어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난 적은 있어도, 일출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라니. 일출을 해외 나와서까지 봐야 하나? 일출을 보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하루 종일 힘들 텐데. 일몰이랑 다를 게 있을까?


평소의 나라면 저런 생각을 갖고 흘려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날은 "일출"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기에 색다르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 번쯤은?'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일출에 꽂힌 나는, 일행들이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야경을 보러 가자는 것도 뿌리치고 숙소에 혼자 남아 잠을 청했다.

내일, 해가 뜨는 피렌체를 보기 위해서


그리고 정말, 새벽에 일어나 모자만 푹 눌러쓰고 혼자서 밖을 나갔다. 해뜨기 30분 전. 어두컴컴하던 길거리.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설레었다. 그렇게 패기 있게 나왔지만 막상 일출을 어디서 봐야 할지도 몰랐다. 일단 숙소와 가까웠던 베키오 다리에 가보자는 생각을 하고 지도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숙소를 나와 조금 지났을까, 걸으면 걸을수록 기분이 묘해졌다.

약 2주 정도의 유럽 여행을 하면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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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철저하게 관광객이었다. 늘 사람 많은 관광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 틈에 끼어, 랜드마크 앞에서 베스트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유명한 음식들을 먹으러 찾아가는 관. 광. 객.

그런데 내가 지금 걷는 이 길에는...

한국에서의 우리 모습처럼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해가 뜨기 전 깨끗한 거리를 위해 청소하던 청소부, 가게 문을 여는 가게 주인들, 아침 일찍 반려견과 산책나온 사람들 등. 일상을 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어제의 그렇게 '북적이던' 관광객들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나도, 이 순간만큼은 관광객이 아니라 주민이었다. 관광객이 아닌 이 곳에 일상을 사는 사람.


꼭 현지인이 된 듯한, 묘한 즐거움을 느끼며 도착한 베키오 다리는 정말 그 기분을 더욱 더 크게 만들어주었다.

20160421_062705.jpg 지나가는 차들과 그저 몇몇 사람들뿐이던 베키오 다리


사람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도 없어, 그저 휩쓸려가듯 스쳐 보았던 어제의 베키오 다리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어제의 그 시끄럽고 정신없던 곳이 정말 이 곳이었을까?

꿈만 같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조용하고 너무나 행복해서.


그렇게 나는 아무도 없던 베키오 다리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숙소에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힘들어도, 꼭 하루는 일출을 보러 나갔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전히 빠듯한 일정에 랜드마크만 찍는 미션 같은 여행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잠깐이라도. 그 잠깐 해가 뜨는 시간, 일출을 보러 나가면 꼭 내가 이 곳에 사는 사람 같았다. 여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꼭 일출을 보러 나갔다.


이후 다양한 곳들을 여행하게 되며 "그동안 여행 다닌 곳들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물론 정말 기억에 남고 즐거웠고 잊지 못할 곳들도 참 많았지만,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면 이곳을 말한다.


피렌체에서의 첫 일출은 정말 잊을 수 없다고,
너도 언젠가 꼭 한 번쯤은 여행 가서 일출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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