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힘들어도 잠깐 참고 웃어넘겨버리자. 나중에 웃으며 이야기할 테니
대부분의 힘들고 고됬던 여행은 후에 더 큰 웃음을 남기며 즐겁게 미화되고는 했다. 아무 탈 없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었던 여행보다 더. (정말 크게 다치고 심각할 정도의 큰일이 있었던 여행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동안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지만, 잊지 못할 여행들이 있다.
더 좋았고 행복했고 즐거웠던 여행들도 있었지만, 이 두 곳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
친구들과 마지막 20대를 보내며 계획했던 '보라카이' 여행.
보라카이에서 4박 5일 동안 정말 즐겁게 보냈다. 조금 비가 오고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액티비티와 아름다운 풍경들은 즐거운 여행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하겠다는 듯 신나게 놀기도 했고, 마냥 물놀이하며 해변에 앉아 여유로움도 만끽했다. 보라카이를 떠나기 전까지는 좋았다, 전까지는.
보라카이에서 떠나는 비행기를 밤 12시로 예약해놓았기에 마지막 날도 여유롭게 해변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전화가 오는 것이다. 샌딩 시간을 앞당긴다는 연락이었는데, (칼리보 공항에서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에서 카티 클란 포트 선착장으로 차로 2시간 이동, 선착장에서 깍반 포트로 보트 타고 보라카이 섬으로 이동, 깍반 포트 선착장에서 숙소로 이동을 해야 하기에 보통 픽업 샌딩 서비스를 이용한다.) 한 시간 두 시간 계속 앞당기더니 결국 예약시간보다 3시간 일찍 호텔에서 샌딩 서비스를 기다려야 했다. 태풍이 와서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것. 늦어지면 태풍 때문에 보라카이에서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에 걱정을 안고 차를 타고 출발했다. 선착장에 도착해 보트를 타고 이동, 정말 생전 그렇게 출렁이는 배를 탄 적이 없다. 바이킹을 좌우로 탄 듯이 흔들리던 보트는 혹여 침몰하지 않을까 싶어 두려움에 덜덜 떨다가 무사히 본섬에 도착했다. 그렇게 업체에서 준비한 봉고차를 타고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는 한국인들과 공항으로 출발했다. '하아... 그래도 보트 타고 잘 나와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를 태운 차가 멈췄다.
하염없이 멈춰있던 봉고차. 운전하는 현지인 아저씨 외에는 모두 관광객이었기에 (한국인 직원은 안내만 해주고 헤어졌다.) 걱정되는 마음에 앉아있는데,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속 주인공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갑자기 뒤에 앉아있는 한국분에게 전화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며 전화를 받은 한국분은 몇 마디를 주고받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한국인 직원인 듯싶었다. 전화를 받은 분이 우리에게 이야기하셨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길이 침수됐다네요, 일단 기다리라는데요?"
멘붕... 이렇게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인가? 망연자실 자동차 안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얼마 흘렀을까, 갑자기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목길로 요리조리 이동하던 차가 멈추고 갑자기 봉고차 문이 벌컥 열리며 한국인 직원이 나타났고 소리쳤다, "모두 본인 짐 가지고 내리세요!! 저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피난민처럼 자신의 짐을 이고 지고 길을 걷는 몇백 명의 사람들이...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던 거대한 트럭까지. 직원이 이야기 하기를, 길이 침수되어 일반 차량은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고 커다란 트럭만이 (거의 군용 차량 같은 트럭이었다.) 지나갈 수 있다고 했다. 트럭이 공항까지 관광객들을 이동시키고 있지만, 저 트럭을 놓치면 다음에 또 언제 올 지 모르니 반드시 저 트럭을 타야 한다는 것.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정말 무서웠다. 무조건 저 트럭을 타야 한다! 는 일념 하에 트럭에 줄을 서 캐리어를 머리 위로 올려 트럭에 싣고, 사다리를 타고 트럭에 올랐다. 꼭 전쟁통의 피난민들 같았다.
겨우겨우 트럭에 올라 공항으로 가던 길. 다행히 트럭을 타고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 사이 비도 그쳐 비행기도 정상 운행을 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서 제일 험난했던 여행, 보라카이. 정말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짧게 한라산 등산 이야기도 해 보자면...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한라산 등산을 가자!"하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생전 등산의 '등'자도 안 해본 내게 제대로 된 등산용품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결국 엄마의 등산화, 등산가방, 스틱을 빌려 제주도로 향했다. 엄마는 내게 등산화를 빌려주시며 '한 번도 신지 않은 아주 비싼 등산화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크, 이제 장비도 다 갖추었으니... 이제 오르기만 하면 된다! 하고 아침 일찍 시작한 한라산 등산. 처음이었기에 쉬운 성판악 코스로 올라갔다. 다행히 길도 잘 되어있고 풍경도 너무 아름다워 즐겁게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발이 이상했다... 뭔가 철퍼덕철퍼덕 거리는 느낌? 에 신발을 보니... oh my god!
등산화의 밑 창이 떨어진 것이다. 분명... 엄마가 좋은 등산화라고 했는데? 그나마 진달래 대피소 바로 직전에 알아차린 덕분에 친구와 대피소에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등산 전문가 포스의 아저씨들께서 나의 신발 상태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너무 사용하지 않아서 고무가 삭았구먼." 좋은 등산화를 사시고도 계속 쓰시던 등산화를 신으시던 엄마 덕분에 신발장에서 너무 혼자 오래 지낸 마음 상한 등산화가 삭았던 것이다... 그래도 마음씨 좋은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압박 붕대로 밑창을 묶고 그 위에 아이젠을 껴서 (3월에 등산을 해서 당시 눈이 조금 쌓여 있던 상황이라 아이젠을 준비해 갔다.) 무사히 나는 백록담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하산할 때부터였다. 눈이 쌓여있던 윗부분에서는 아이젠을 끼고 걷는 것이 오히려 편했지만, 점점 내려가다 보니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아무것도 없는, 아니 울퉁불퉁한 돌길을 아이젠을 끼고 걸으니 아이젠의 톱날이 꼭 나의 발을 찌르는 것 같았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해 나는 아이젠을 풀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철퍼덕거리던 밑창은 결국 나의 등산화를 떠나갔고... 나는 얇은 밑창만 남은, 흡사 실내화를 신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녹은 눈 때문에 점점 젖어가던 등산화.. 심지어 실내화 같은 등산화를 신고 하산하다 보니 발바닥이 너무 아파 오른쪽 발에 힘을 주고 걸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자 오른쪽 등산화의 밑창도 철퍼덕거리기 시작했다. 한쪽은 실내화, 한쪽은 철퍼덕 거리는 등산화를 신고 걷던 나는 결국 등산할 때보다 더 힘들게 하산을 하게 되었고. 나의 발톱은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당시만 해도 '다시는 안 간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라고 치를 떨며 이야기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미화되는 것은 더불어 이 두 이야기는 나의 여행 에피소드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곧 한라산으로 또 등반을 갈 예정이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봐도 그러했다. 힘들었던 등반이나 고난이 많았던 여행. 최근 다녀온 산티아고 친구들도 너무 힘들었지만,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즐거웠고 결국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더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아니, 망각보다는 미화가 큰 것 같다. (물론 여행을 잘 마쳤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정말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더 기억에 남고 생각나는 여행이 되는 것 같으니. 오죽하면 김영하 작가가 실패한 여행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여행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여러 번의 힘든 여행을 다녀오고, 그 기억들이 미화돼 즐거운 여행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여행에 가서 힘들더라도 짜증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조금만 참자고,
나중에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날이 올 테니.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곳을 다니다 보니, 보라카이나 한라산 같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순간의 힘듦으로 짜증을 내어 여행을 망치거나 서로의 감정이 상하는 여행들도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인데 말이다. 그럴 때면 참 많이 후회를 했다. 조금만 참을걸, 조금만 웃어볼걸. 결국 그 상황들도 마무리되었고 잘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늘 여행을 갈 때면 다짐한다. "조금만 더 웃자. 여유롭게 생각하자. 나중에 웃으며 이야기하는 날이 올 테니 말이다! 나는 태풍이 와 군용 트럭도 타보고,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발톱이 빠지기도 했는걸?"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