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라고 하셨다..

다섯 번의 피드백, 다섯 번의 원점

by 이슬기

기업 홈페이지를 만들며 먹고 산다.

만들기 전에 먼저 '누가 결정하는지'부터 확인하게 된 것은 이 프로젝트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프로젝트가 있었다.


기존 홈페이지가 B2C와 B2B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근데 얘기를 하다 보니 결국 원하는 것은 B2C였다. 일반 고객한테 상담 문의를 받고 싶은데 홈페이지는 B2B 쪽 내용 위주로 편성돼 있었다. 방문자는 있는데 문의로 안 넘어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대표님과 첫 미팅에서 방향을 잡았다. B2C 고객 기준으로 전환 흐름을 다시 설계하자고 했다. 어디서 관심이 생기고, 어디서 신뢰가 쌓이고, 어디서 문의하기를 누르게 되는지 그 동선을 처음부터 다시 짰다.


메인페이지 초안을 보내고 피드백을 기다렸다.

돌아온 답이 "기존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였다.


순간 싸해졌다.


B2C 전환 중심으로 구조를 완전히 바꿨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그래도 내가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서 왜 이 섹션이 여기 있는 건지, 이 흐름이 왜 이전과 다른 건지 정리해서 보냈다.


피드백이 왔다. B2B 위주로 바꿔달라는 내용이었다.

상담에서 합의한 방향과 정반대였다. B2C 고객이 보는 페이지인데 B2B 내용을 넣으면 타겟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걸 설명드렸다. 대표님도 납득하셨다.


근데 다음 피드백에서 또 같은 이야기가 돌아왔다.

이게 다섯 번 반복됐다. 설득하고 동의받고 다음 피드백에서 다시 원점.


단톡방에서 대표님께 여쭤보면 A 방향으로 답이 오는데 며칠 뒤 피드백 정리본을 열어보면 B 방향으로 적혀 있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 이해한 건가 싶었는데 두세 번 반복되니까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피드백 정리는 항상 실장님이 하고 계셨다.

그리고 실장님의 우선순위는 대표님과 달랐다.


대표님은 B2C 전환을 원하셨고 실장님은 브랜드 어필을 원했다. B2C 고객이 뭘 보고 싶어 할까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가 뭘 보여주고 싶은가에 계속 초점이 가 있었다. 분명 같은 단톡방에 있었는데 대화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디자인 방향에서도 모순이 있었다.


브랜드 무드를 물었을 때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원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톤으로 잡았는데 실장님이 가져오시는 레퍼런스는 매번 발랄하고 귀여운 옐로 톤이었다. 고급스러운 무드를 원한다면서 참고하라고 주시는 건 정반대 방향인 거다.


색감이 왜 안 맞는지, 이 레퍼런스대로 가면 원하시는 무드에서 멀어진다는 걸 설명드렸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다음 피드백에서 또 비슷한 톤의 레퍼런스가 왔다. 솔직히 그 지점에서 좀 지쳤다.


결국 대표님과 실장님의 의견이 다른 부분을 정리해서 "어느 쪽으로 진행할까요?" 하고 물었다. 내부에서 방향 먼저 정리하시고 진행하는 것이 서로 덜 번거로울 거라는 이야기도 드렸다.


다섯 번의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본을 보내드리고 확인 후 추가 피드백 주시면 마무리하겠다고 안내드렸다.

그 이후로 프로젝트는 그대로 멈췄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사실 이 프로젝트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한 프로젝트에서는 선금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가 낭패를 봤고,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수정 범위를 대충 정해뒀다가 끝없이 늘어나는 요청에 시달렸다. 굳이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정해놔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그때마다 '다음엔 이건 꼭 확인하자'는 기준이 하나씩 생겼다.


돌이켜보면 이런 기준들은 전부 잘 풀린 프로젝트가 아니라 꼬인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들이다. 잘될 때는 왜 잘되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고, 안 될 때 비로소 '어디서부터 잘못됐지?'를 되짚게 되니 말이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나씩 쓰려고 한다. 멋진 성공담 같은 건 없다. 프로젝트에서 부딪히고 거기서 생긴 판단 기준들. 그게 쌓여서 지금 내가 일하는 방식이 됐으니-.




그 이후로 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최종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확인한다. 조직 안에서 방향이 합의되지 않으면 나는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다.


이 경험이 지금 우리가 프로젝트 착수 전에 던지는 질문들의 출발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