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다음 날 아침, 세화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언제 붐볐냐는 듯 거실은 말끔했고 식탁에는 식은 잡채와 고기 산적 몇 조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향과 라이터도 보였다.
잠을 통 못 잔 탓인지 배고프지 않았다. 오늘 아침 식사는 걸러도 되겠다 싶어, 욕실로 들어가 서둘러 등교 준비를 했다.
허둥지둥 신발을 신었다. 머리칼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으나, 이내 손을 떼고 아 맞다, 하며 몸을 돌리고는 신발장 위 상근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가까스로 교문이 닫히기 전 학교에 도착한 세화는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다.
“야 김세화 웬일로 늦냐.” 뒷자리 단발머리 소녀가 세화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아, 어제 늦게 잤…” 세화는 뒤로 등을 돌리며 대답했다. “야야, 금요일에 영서 생일이잖아.” 단발머리 소녀 지수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세화 코앞에 들이밀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달력이 띄워져 있었다. 지수는 스마트폰 화면을 흘깃 보고는 손가락으로 이번 주 금요일을 가리키며 떠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까 아침에, 영서랑 소진이랑 금요일 학교 끝나고, 중앙로 미스터피자에서 생일 파티 하기로 했는데, 너도 갈 거지? 우리 같이 안 논 지 오래됐잖아.” 지수는 내심 서운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음…” 상근이 실종된 후 세화는 친구들과 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 가장 친한 무리의 생일 파티엔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 가자” 세화는 대답했다. “오케이. 단톡방에서 시간이랑 메뉴 정해보자.” “그래그래.” 세화는 답하곤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음력 7월 15일을 검색했다. 백중도 이번 주 금요일이었다. 영서의 생일 파티가 있는 사흘 후였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밥을 먹던 세화가 젓가락을 내려두고, 앞에 앉은 지수에게 물었다.
"야, 귀신도 음식이 먹고 싶을까"
"당연하지, 난 죽으면 떡볶이 배 터지게 먹을 거야. 귀신이면 살도 안 찌잖아." 지수는 사뭇 진지한 눈빛이었다. “근데 왜?”
“아… 아냐”
대답을 들은 세화는 짧게 대답하고는, 입을 씰룩이며 천장을 잠깐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수, 나 금요일에 안 될 것 같아. 미안."
사흘이 지나 금요일이 되었다. 하굣길, 세화는 학교 앞 '옛날 통닭집'을 서성였다. 주황색 조명이 켜진 그곳이 상근의 단골 치킨집이었다. 회식 후면 늘 누런 봉투에 통닭 한 마리를 사 오던 곳.
가게에 들어가기 전 세화는 상근과 통닭을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 우리 딸 다리 먹어라." 아빠는 늘 닭다리를 나에게 줬다. 아빠는 퍽퍽 살이 좋다 했지만 아마 거짓말이었다. 할머니도 함께 치킨을 먹을 때면, 아빠를 위해 닭다리를 정성스레 뜯어 주었고, 그걸 아빠는 내게 다시 건 냈다. 아빠도 닭다리 좋아했으면서…
세화는 결심한 듯 씩씩하게 통닭집으로 들어갔다. “아가씨, 뭐 줄까?” 두건 쓴 아저씨가 튀김기로 통닭 기름을 탈탈 털며 물었다. "저기... 옛날 통닭 한 마리 주세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 한 장을 꺼냈다.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봉투를 안고 세화는 귀가했다. 거실엔 불이 꺼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세화는 숨을 죽인 채 신발장 위 상근의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조심스레 신발을 벗었다. 제 방으로 향하다가 발길을 돌려 부엌으로 향했다. 아침에 봐 둔 식탁 가장자리에 향과 라이터가 그대로 있었다. 향 하나와 라이터도 챙겨 주머니에 넣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숨을 폭 내쉬고 살며시 방문을 잠갔다.
교복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밑에서 공부상을 꺼냈다. 상 가운데에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통닭을 올리고, 향은 고정할 것이 필요했다.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필통 속 지우개를 꺼내, 가운데에 힘을 주어 향을 꽂아 넣었다. 마지막으로 주머니에서 상근의 사진을 꺼내 독서대 위에 올리고 공부상 가운데에 두었다. 제법 제사상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이어서 라이터도 꺼내 향에 불을 켜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 끝에 결국 불을 켰다. 불이 꺼질세라 향에 붙이려 했지만 생각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불이 붙었지만 이내 꺼졌다. 이게 맞나 싶다가, 향에서 은은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 뒤로 아빠의 무표정한 사진이 보였다. 이제 완벽한 제사상이 완성되었다. 세화는 코끝이 찡해지는 걸 참으며 양손을 모았다. "아빠... 배고팠지?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통닭 사 왔어. 얼른 먹어. 보고 싶어 엄청…”
그때 문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을 두드렸다.
쾅, 쾅! "세화야! 문 열어봐라!"
할머니 정자였다.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향 냄새를 맡은 게 분명했다.
"자, 잠깐만요!" 세화는 황급히 향을 끄려 후후 불었지만 꺼지지 않았다. 나뒹구는 이면지를 접어 향에 대충 비벼 껐다. 쾅, 쾅! 너 방에서 뭐 하냐! 향이 꺼진 듯하자 제사상을 침대 옆으로 밀어 넣었다.
"빨리 문 안 열어!" 철컥. 세화가 문을 열자마자 정자가 방을 훑었다. 방엔 연기가 가득했다. 작은 방에서 향 냄새가 진동을 했고 미세하게나마 통닭 냄새가 났다. 정자의 시선이 침대 옆, 엉성하게 숨겨진 제사상에 꽂혔다.
"이... 이 녀석이! 너 지금 뭐 했어!" "아... 아무것도 안 했어요." "너, 너!! 누가 이런 거 가르치데!" 정자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세화의 어깨를 흔들었다. 생전 처음 듣는 할머니의 호통에 세화의 눈물이 터졌다.
"흰머리 할아버지가... 아빠 밥도 못 먹고 배고프다고 했단 말이에요…" 세화가 터지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말했다.
"뭐, 뭣이라? 너...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느냔 말이다! 산 사람한테 제사를 지내면 진짜로 데려가라고 비는 거란 말이다!"
정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다시 시선을 옮겨 아들의 제사상을 바라보더니 이성을 잃고 절규했다. 눈 깜짝할 새 제사상 앞으로 가, 상을 양손으로 집고는 엎어버렸다. 바닥엔 통닭과 타다만 향의 재. 상근의 사진이 뒹굴었다.
“너, 너 때문에 상근이 죽으면 책임질 거야? 어? 책임질 거냔 말이다!" 정자는 다시 세화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할머니, 제발 이것 좀 놓고 얘기해요... 아파요..."
삐비빅- 그때, 퇴근한 지은이 들어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불이 켜진 세화 방으로 갔다. 울고 있는 세화와 작은 어깨를 움켜쥐고 있는 시어머니가 보였다. 순간, 지은의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억눌러있던 무언가가 폭발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지은이 달려들어 정자를 밀쳐내고, 세화를 등 뒤로 감쌌다.
"이, 이년이..." 정자는 며느리를 노려보다가, 방바닥에 엎어진 통닭과 상근의 사진을 보고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어머니, 대체 애한테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신데요!"
"아고... 내 새끼... 내 불쌍한 새끼..." 정자는 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두 달간 그녀를 버티게 해 주었던 둑이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세화가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제발 이제 그만해요! 아빠 죽었어! 우리 아빠 보내주자 좀!"
그 말은 비수가 되어 지은의 가슴에 꽂혔다. 지은은 이마를 짚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바닥에 나뒹구는 통닭과 남편의 사진에 닿았다. 사진 속 상근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눈물이 차올랐다.
"야 이... 나쁜 놈." 지은이 사진을 향해 소리쳤다. "평생 행복하게 해 준다며... 순 거짓말쟁이, 나쁜 놈!"
지은은 상근의 사진 앞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세화 역시 엄마의 등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좁은 방 안이 세 여자의 통곡으로 가득 찼다. 그때, 바닥을 치며 울던 정자가 쉰 목소리로 상근의 사진에 대고 소리를 내뱉었다.
"그래... 이 써 글놈아...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게 가장 큰 불효인 거 모르느냐. 이 못난 놈..."
정자가 상근의 죽음을 입 밖으로 낸 건 처음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처음 인정한 엄마의 작별 인사였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까. 셋의 울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지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우리 이제 그만해요. 다들 지쳤잖아요..."
"......" 정자는 대답 없이 눈물 젖은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통닭을 봉투에 주워 담았다. 이내 아들의 사진을 집어 들어 옷소매로 닦았다. “그래, 그만하자꾸나. 다들 배고프지? 오랜만에 저녁이라도 먹을까. 내 금방 차려주마.” 정자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오늘 저 앞에 외식하시죠. 돼지갈비 집 어때요?” 지은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 순간 세화는 고개를 들어 정자의 손에 들린 아빠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들거렸다.
세화의 눈에 비친 상근의 표정은 오묘했다. 눈물 젖은 눈 탓에 흐릿해 보였기 때문일까. 사진과 함께 나뒹군 통닭의 기름 때문일까. 아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