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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Apr 16. 2016

갑자기 내 인생에 미안해졌다

삶이 바뀌는 순간

밤새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막차를 놓치게 되고, 집에 갔다 몇 시간을 자고 나오는 것 조차 사치로 느껴지니, 책상 앞에서 하던 일이나 마무리하자 싶기도 했다. 최장 5일 연속으로 집에 못 갔다. 오늘은 갈 수 있겠지, 아니야 오늘은 가야 해, 더 이상은 안 돼 오늘은 가야 돼 하면서, 5일이 흘렀고 회사 바닥에 노란 박스를 깔고 5시간 정도를 잤다. 5일 치가 그랬다.


가끔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니 대견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미련한 동물 같기도 해서, 소가 되어 자갈밭을 갈거나,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리거나, 여기서 컴퓨터로 타자를 치는 게, 도대체 뭔 차이가 있나 싶었다. 누군가 채찍을 휘두르며 아이디어가 이것밖에 없냐를 쉽게 외칠 때, 네 이것 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한번 해보겠노라, 더 멋진 것을 찾아오겠노라,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할 대답을 하고 밤새 끙끙댔다. 딴에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프로라고 위로했지만, 사실은 복종하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노예근성이 발동했던 것이다. 더 솔직해지자면 다들 불경기라고 하는데 일거리가 떨어져서 굶어 죽을까 두려웠다.  업계에서 평판이 나빠질까, 예산은 생각하지도 않고 협상과 거절을 하지 않고 수용하기 바빴고 마지막에는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나는 호구 인가 하는 억울함이 남았다.


그러다 지방의 프로젝트가 있어 내려가게 됐고, 당연히 하루 정도는 밤을 새워서 준비를 했다. 부산보다 더 걸리는 곳이라 제때 도착하려면 오전 7시에는 출발을 해야 했으므로, 누군가는 밤새 준비를 해야 마땅한 상황이기도 했다.


전일에 내려가 세팅을 했으므로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다음날 아침 강연자는 서울에서 내려와 한 시간 남짓 머물렀다. 강연이 끝나자, 이 먼 곳까지 얼마나 힘들게 오셨냐, 얼마나 고생하셨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칭송의 말이 넘쳐났다. 행사장에서 역까지 편안하게 차로 의전을 했다. 어제 내려와 여관방에서 잔 뒤 다크서클이 껴서 더욱 쭈꾸미 같았던 나도, 떠나는 차를 향해 감사하다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미안했다. 내 인생에 미안했다. 태어나서 가장 미안했다. 그 강연자가 예전부터 잘 아는 사람인데다 몇 살 더 먹은 나보다 크게 성공했으니, 왠지 부럽고 나 자신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느낀 감정은 초라함, 부러움이 아닌 미안함이었다.


아무도 내게 고마워하지 않는 삶,

헐값에 소중한 시간을 팔아먹고도

고맙다는 말을 못 듣는 인생.

나조차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니

남들이 주는 밥 한 그릇에 벌벌 떠는 삶.

30배 이상의 시간을 투입했지만 절반의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미안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던 에너지로

내가 뭘 잘하는지 찬찬히 찾아보기로 했다.

먹을거리를 던져주길 바라지 않고

내가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100일.

매일 읽고 쓰고, 그림 그리며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 보름달이 아니야

가려졌던 거지. 우리처럼


글 | 김도연

그림 |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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