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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Apr 16. 2016

하다 보면 가다 보면 살다 보면

난 목소리가 좋은지 왜 이제 알았을까

일 년에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한 삼백 번 정도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듣는 것 같다. 오랜 친구들이 뜬금없이 낯간지러운 칭찬을 하진 않으니,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군요라는 뜻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밤 12시에 들으면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 스윗박스를 진행하던 정지영 아나운서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사실 크게 귀담아 들어본 적이 없다. 목소리로 먹고 살 것이 없었으므로 그냥 조금 잘난 재주에 불과했다.


오히려 코맹맹이의 귀여운 목소리를 부러워하며, 나는 키가 큰데다 목소리까지 중저음이니 절대 귀엽지 않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오빠들은 혀 짧은 코맹맹이를 좋아한다고 맹신하던 때는 낮은 목소리가 싫었다.) 방송용 같아서 현실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건 욕인가,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입을 다물란 말인가 싶어서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kbs 기자 시험을 볼 때는, 기자를 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좋은 게 아니냐는 디스 아닌 디스를 받기도 했고, 결국 최종의 문턱에서 떨어졌다.(그땐 애니메이션 성우 같았다)


누군가 들으면, 뭐야 지금 잘난 척하는 거야,라고 욕할 수도 있지만 어중간한 재주를 가진다는 게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목소리는 내게 계륵과 같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목소리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바뀌어간다. 그래도 내 재주 중에 가장 월등한 것이 목소리 아닌가 하고, 객관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어떠어떠한 목소리가 좋은 거다, 성우처럼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b급이다, 따위의 편견들을 버리고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올해 초부터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책을 한 권 정해서 이야기하고 낭송한다. 병원에 입원했던 친구에게 책을 녹음해서 보내줬는데 피드백을 핑계 삼아 지하철을 오가면서 들으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오~ 이거 괜찮은 걸, 왠지 남에게 들려줘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고, 신간은 오디오 북이 없는데, 내가 낭송해서 녹음하면 된다 생각하니 추진할 이유도 생겼다.


네 덕분에 다시 책을 읽어보고 싶네!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지인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책을 잠시 놨던 친구들이, 다시 한번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고 한다. 고마운 말이다. 어딘가에서 내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것도 고맙지만 삶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건 더 값지다.


그러나 아직도 녹음을 할 때 발음이 꼬이거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런 걸 내보내도 되나 싶어, 올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기도 한다. 완벽한 것을 바라는 데 나는 항상 부족하고, 부족하게 느껴지고 프로들에 견주니 가끔 초라하다.


그래도 우선 해본다. 글이든 그림이든. 지금도 일상의 시간을 쪼개 짬짬이 글을 쓴다. 가방에는 내일 팟캐스트에서 소개할 신간이 들어있다. 인생이 어찌 될지 몰라도 그냥, 한다. 꾸준히 한다. 부끄럽다고 주춤하면, 내일도 여전히 부끄럽지 않을까 싶어서.


씨앗이 콘크리트 돌 틈에 내려앉았다면, 그곳에 그냥 뿌리내려 보는 거다. 손으로 그릴 때까지 오늘은 발로 그린다.


아이폰은 팟캐스트- 책읽는 다락방

삼성폰은 팟빵앱- 책읽는 다락방

엘지폰은 안알랴쥼


글 | 김도연

그림 |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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