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구구글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연 May 30. 2021

[05.30] 당근


“너도 나왔냐?” C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간다. 너도 왔냐니. 요근래 친구들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모임의 원년멤버다. “자자~ 주목. 오늘은 내가 승진한 턱으로 쏘는 거니까 다들 막 시켜!” 모임을 주최한 K가 호탕하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K는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 반장이었고 이 모임의 리더이다. 국내 굴지의 S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까지 했으니 이런 친구를 둔 것이 자랑스럽다. 지난번 K에게 조금 솔직하게(?), 그래 오지랖을 부려 충고질을 하고 K를 기어이 울려버린 다음 이 모임에 다시는 불려 나오지 못했다. 페이스북을 보면 가끔 모이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존심이 뭐라고 먼저 연락하지 못했지만 그간 무척 외로웠다.      


오늘 친구들 만나면 그냥 가만히 있다가 와요. 제발 싸우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가 와요. 알았죠? 듣고 있어요?” 아내는 오랜만에 모임에 나가는 나를 향해 초등학생한테나 할법한 잔소리를 했다. 아내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고 집에서는  멋진 가장이고 아들이 초등학교  ‘아빠는 슈퍼맨이야라고 편지도 써줬는데,  밖에 나가면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나도 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나를 두고 꼰대라고 하는  알고 있다.  자기들 잘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고  말이 틀렸나? 들어보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소리인데 꼰대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억울했다. 오늘은 아내의 얼굴을 봐서라도 친구들과  지내다 가야지...라고 하는 순간.     


 옷이 말이야. 내가 얼마 전에 미국으로 출장을 갔잖아. 색스 피프스 애비뉴에 갔는데 마네킹이 입고 있는 거야. 한국에는 입점이  되는 거라네.  하나 남았길래 내가 샀지. 이거 입고 나가면 10살은 어려 보인다니까.” 관종 새끼. 20대도 아닌데 형광 주황색의 재킷을 입고 왔다. 어울린다고 생각을 하나 보지. 점잖지 못하고 웃겨서 실소가 나오려고 하는데 “ ? 명품이긴 하지. 한국인들이 아는 명품 브랜드가  거기서 거기지. 이건  윗쯤 되는 브랜드야.  나한테는 별로  비싼데, 누구한테는   월급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기 시작한다.  모임에서 연봉이 가장 적은 사람인 다. 더욱이 회사가 힘들어 인원감축까지 하고 있는 나를 향해 친구들의 눈이 쏠렸다. 갑자기 욱하고 욕지기가 올라왔다.     


중국에서 돈 좀 벌어왔나보다. 향수도 뿌렸냐? 100m 멀리에서도  오는지 알겠더라. 어디 가나 그렇게 튀어야 좋은가 본데, 그거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거야. 속이 허하고 가난할수록 밖으로 화려하고 꾸미는 건데  보니까 알겠다. 잠바 때기에  쓰지 말고 내면을 채워봐.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어쩜 사람이 그리 변하질 않냐순간의 정적. 이미 말은 화살이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꽂혔다. C 울그락푸르락  얼굴로  잔을 움켜 잡고 나한테 던질 기세였다. 어어... 이거 아닌데. 아내가 가만히 있다가 오라고 했는데...  친구는 지금 나를 향해 덤벼들려고 한다. 나는 엉거주춤 옷을 챙겨 뒷걸음질로 황급히 나와버렸다.      


배고프네. 밥도 안 먹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걱정하겠지. 걷다가 아파트 단지 앞의 분식가게에 들어섰다. 김밥 두 줄을 시키고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김밥이 나왔는데 삼분의 일이 주황색이다. “사장님! 당근이 왜 이리 많아요? 시금치는 안 들어가요?” “아.. 시금치요. 사람들이 싫어해서요. 애들이 특히 싫어해요. 요새는 시금치 빼고 당근 넣죠.”


당근이 든 김밥을 잘근잘근 씹으며, 내가 떠난 후 모임에 남아 하하호호 웃을 C를 생각했다. 주황색 관종새끼.           


매거진의 이전글 [05.29]게으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