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건네는 빛

잡으려 하지 않을 때 닿는 것들에 대하여

Canon EOS 5d Mark II, 50mm, ISO 1000, f.1.4, 1/250s

해가 기울 때의 풍경은

언제나 말수가 적다.

하루를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빛의 높이만 낮춘 채

천천히 물러난다.

이 시간에는

설명보다 여백이 먼저 남는다.


언덕 위에 선 예수상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두 팔을 뻗고 있지만

붙잡으려는 몸짓은 아니다.

받으라고 명령하지도,

따르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빛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해가 손끝에 걸리는 순간,

조형물은 상징을 넘어선다.

가르침도, 교리도 아닌

하나의 태도가 된다.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올려다보게 만드는 것도 아닌

같은 높이에서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자세.


빛은 잡히지 않는다.

붙들수록 흩어지고,

소유하려 할수록 멀어진다.

그런데 이 장면은 말한다.

잡지 않아도 된다고.

손을 내밀되

쥐지 않아도

충분히 닿을 수 있다고.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이미 하루를 접고 있다.

비닐하우스 위로 내려앉는 노을,

끝나가는 노동,

조용히 귀가를 돕는 길들.

그 모든 위에

예수상의 실루엣은

축복처럼 서 있다.

판단 없이, 조건 없이.


나는 이 사진 앞에서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꽉 쥔 채 살아왔는지.

불안해서, 놓치기 싫어서,

증명하고 싶어서.

하지만 어쩌면

삶의 많은 순간은

이렇게 손을 펴는 쪽이

더 정확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해는 곧 지평선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빛은 사라지고

형상은 다시 어둠에 잠기겠지.

그럼에도 이 장면은 남는다.

건네려는 자세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한 순간의 기록으로.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붙잡지 않아도

축복은

열린 손 위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