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뒤에야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길을 가까이서 내려다보면
계절은 늘 발밑에 먼저 도착한다.
나무 위에서는 이미 끝났을지 모를 봄이
아스팔트 위에서
늦게 숨을 고르고 있다.
꽃잎들은 흩어졌고,
길은 젖어 있다.
이 길을 달릴 때는
아무도 이 풍경을 보지 못한다.
속도가 모든 것을 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멈춰 서서 고개를 낮추면
지나간 것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완성된 봄이 아니라
마무리된 봄의 얼굴로.
꽃은 떨어진 뒤에야
길과 같은 높이가 된다.
더 이상 올려다볼 필요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저 그대로 놓여
흔적이 된다.
아름다움이란
때로는 이렇게
낮아진 자리에서 더 또렷하다.
비는 남김없이 적셨다.
꽃잎도, 길도,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그래서 이 장면에는
구분이 없다.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부터가 인간의 영역인지
흐릿해진다.
모든 것은 한 번쯤
같은 조건으로 젖어야
공평해지는 것처럼.
나는 이 풍경 앞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우리가 애써 붙잡으려 했던 순간들은
대부분 이렇게
놓친 뒤에야 의미를 얻는다고.
손에 쥐었을 때보다
손을 놓았을 때
더 오래 남는 기억처럼.
이 길은 다시 마를 것이고
꽃잎은 사라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분명
한 계절은
여기까지 와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이 장면은 충분하다.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지나가버린 것들은
사라지는 대신
길이 되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