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그리고 친구
2018년, 막 스물한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우연히 본 단편 웹툰 하나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10편 남짓한 짧은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머물렀다.
내용은 희미하게 잊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인상 깊었다’는 감정만 선명했다.
그 웹툰이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됐다.
왜 그 이야기가 내 마음속 어딘가에 깊게 남았는지를.
영화를 보는 내내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영화 속 ‘소리’는 학교폭력을 당하던 ‘지민’을 돕다, 되려 자신이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모두가 외면하던 순간. 용기를 냈지만 결국 혼자가 된 소리.
그 외로움과 상처가 너무 익숙했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겪었다.
아직도 그 기억 때문인지 사람들이 열광하는 <더 글로리>나 <스카이 캐슬> 같은 드라마는 끝내 보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일진’이 많았다. 학교폭력위원회가 한 해에 백 번 넘게 열릴 정도였다.
강제전학을 가는 학생도 부지기수였다.
그때의 학교는 법이나 도덕보다,
‘누가 더 무섭고 힘이 세냐’가 모든 기준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의 출석번호 다음이었던 나는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느 날 남학생들이 그 친구의 등을 주먹으로 치며 괴롭히는 걸 보다 못해 “그만해.”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다음 날부터 친구들은 나를 외면했다. 타깃은 내가 되었다.
수업시간마다 뒤에서 욕이 들려왔고, 누군가의 주먹이 내 등을 툭툭치고 지나갔다.
어느 날은 책가방이 뒤집혀 있고, 내 일기장을 돌려가며 읽고 있었다.
결국 반에 있을 수 없어서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으로 숨어들었다.
차라리 무관심이 편하게 느껴졌다.
이유 없는 폭력은 점점 심해졌고, 어느 날 밥을 먹다 울면서 부모님께 전학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바로 학교로 전화하셨다.
하지만 학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 학생이 가정 형편이 어렵고 센터에서 생활 중이라 부모님이랑도 연락이 잘 안 됩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 시절엔 ‘학교폭력’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었고, 학교도 문제를 덮고 넘어가고 싶어 했다.
결국 괴롭힘은 1년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 내 옆에 묵묵히 있어준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아이였다.
친구는 옆반에 배정되었지만, 점심시간이면 혼자였던 나를 늘 찾아왔다.
방과 후엔 함께 공부를 했고, 공부를 잘 하는 친구 덕분에 나 또한 전교 30등 안으로 성적이 올랐다.
그때 우리의 꿈은 경찰이었다. 함께 태권 도장을 다녔고,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무너지긴 했지만 금세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때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 동안 읽었던 책들은 지금도 나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카네기 인간관계론』은 처음으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사람 관계에 대한 고찰,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3학년이 되어 나를 외면했던 친구와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친구는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안녕? 00아 우리 다시 친하게 지내자.”
그 친구에게 감정은 없었다. 다만 궁금했다.
“왜 그땐 나를 외면했어?”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무리에서 중심이던 애가 그냥 ‘오늘부터 00 이는 무시하자’고 했어.”
그 말을 듣고 알았다.
이유가 없어도, 내가 잘 못이 없어도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무리 속 친구들도 사실은 두려웠다는 걸.
그 이후로 나는 관계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됐다.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고, 누가 나를 좋아하든 미워하든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조용히 내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그날 밤,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중학교 때 계속 따돌림을 당했어. 그래서 그런가 봐. 친구한테 너무 집착하게 돼.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줘.”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누군가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게 무서웠다.
불과 3년 전의 나는 버림을 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3년 후 나는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단지 친구일 뿐인데, 누군가를 버릴 권리가 나에게 있을까.
평소 약속을 잘하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그 친구에게 약속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버리지 말라는 말'도 하지마. 나 그럴 수 있는 사람 아니야”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가끔 연락이 오면 여전히 그때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지금도 그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친구는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영화 속 소리는 몸이 약했던 호연의 마음을 열어주고, 호연은 또 다른 외로움 속의 동순이를 찾아준다.
누군가의 용기와 친절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한다.
나 역시 그랬다.
운 좋게 따듯한 친구를 만났고, 나를 지켜준 가족이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사람을 믿는 법을 포기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어둠에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무리에 속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무리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한두 명, 소수다. 하지만 그 소수의 관계가 내 인생을 바꿨다.
그 친구 한 명 덕분에 나는 여전히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얼마 전, 사촌 동생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직장 동료의 자녀 또한 따돌림으로 인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은 예전보다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와 지금을 관통하며 사라지지 않는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이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당연히 힘들 거야.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분명히 지나가.
도망쳐도 괜찮아. 네가 가장 소중해.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야.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너를 지켜주고 싶어.
누구도 너를 상처 줄 자격은 없어.
소리와 동순이는 마녀의 정원에서 메리골드 차를 마신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동순이가 교실에서 승규와 대화하던 장면. 그의 교과서에는 ‘행복’에 관한 글이 적혀 있었다.
영화 곳곳에는 이렇게 행복에 대한 단서들이 조용히 숨겨져 있다.
지금은 비록 어두운 순간일지라도 언젠가는 행복이 오고야 마는 게 아닐까.
메리골드처럼 우리에게도 반드시 찾아올 그 행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