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의 제주도 첫 출근길

도시의 빠름을 벗어나 조금은 느려진 하루


첫 출근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창밖에는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아, 내가 정말로 제주에 왔구나.’


바다를 보며 출근을 한다는 게 아직은 믿기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 하늘에 걸린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다.
이렇게 여유로운 출근길은 처음이었다.


도시에서의 출근길은 늘 회색빛이었다.
한때 출퇴근 왕복 4시간을 견디며, 일과 집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운이 좋아 자리에 앉으면 잠을 자기 바빴다.
흘러나가는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으니까.


특히 지옥철이라 불리는 9호선 급행을 타던 나는
매일 아침 사람들의 숨소리와 한숨 속에 섞여 있었다.
한 번은 앞에 서 있던 학생이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고 주저앉은 적이 있다.
급히 자리를 양보하고 숨을 고르라 했지만, 결국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편안한 숨을 쉬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도시의 출근길.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하지만,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각자의 작은 네모박스 속에 갇혀 화면을 바라보던 사람들.
아직 업무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지쳐 있던 얼굴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두운 지하를 뚫고 다니던 출근길은 내게 늘 답답함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더라도, 창문 밖 풍경이 보이는 버스를 타는 걸 좋아했다.

버스는 느렸지만, 창밖의 풍경은 매일 달랐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비가 내렸으며,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날렸다.

똑같은 출근길 속에서도 그 작은 변화들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려주었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하루를 다르게 느끼게 해 주었다.


제주에는 지하철이 없다.
그 사실이 나에겐 오히려 좋았다.

도시의 빠름과 편리함은 없지만, 가끔은 느리게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그 느림 속에 서 있다.




오늘은 나 홀로 첫 출근이었다.
동기는 다음 날부터 근무를 시작하기로 했다.
“오늘의 목표는 인사 잘하기.”

신입사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첫인상 아닐까. 따뜻한 인사 하나가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되니까.
혼잣말처럼 다짐하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날은 마침 중대형 항공기 운항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국내선의 경우 대부분 보잉사의 B737-800 기종을 사용한다.
무려 5,000대 이상이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단거리 노선에 최적화된 기종이다.
보통 중대형기는 중장거리 국제선에 투입되지만, 이날은 새 항공기를 시험 운항(TEST FLT) 하기 위해 김포–제주 노선에 배정된 날이었다. 덕분에 사무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사수는 현장 감독을 위해 나가 있었다.
나는 꼼짝없이 말 한마디 못하는 ‘감자’가 되어 사무실 한편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의 인사도 없이, 그저 눈이 마주치면 목례를 하며 미소를 짓는 게 전부였다.


창밖을 바라보니 램프 구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행기가 천천히 활주로를 이동하고, 유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이륙을 준비하는 항공기들의 불빛이 반짝였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는구나.’

그 생각이 들자 파란 하늘처럼 괜히 마음이 붕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사수와 처음 말을 섞을 수 있었다.

“집은 잘 구했어요?”,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됐어요?”, "이불은 가지고 왔어요?"
이불 사소하지만 나의 수면을 걱정해 주는 그 한마디가 어쩐지 따뜻했다.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날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퇴근길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햇살이 바다 위로 길게 흩어지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백팩과 캐리어를 든 관광객들의 설렘이 가득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의 시작.
그 표정들은 내가 평소 보지 못했던 출퇴근길의 얼굴들이었다.

도시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여유였다.
아직 출근을 하지 않은 동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여기서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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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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