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 쥐구멍.

by 로그모리

'오늘 길이 미끄럽네. 천천히 걷자.'


"넘어질 것 같아. 무서워."


'내가 잡아줄게. 걱정 마!'


온 신경을 집중하고,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며 걸었다.


나야 자빠져도 그만이지만,

지켜줘야 하니까.


꼭 잡은 손이 어찌나 귀엽던지,

모든 길이 꽁꽁 얼어있기를 바랐다.


'괜찮아?'


"응 그래도 좀 나아졌어."


'걱정 마. 꽉 잡고 있어.'


뿌듯한 마음을 느끼고 있을 때,

불안한 감각이 온몸을 스쳐갔다.


어..?


철푸덕.


"괜찮아?"


'...보지 말아 줘...'



괜찮다고, 웃겼다며 건네는 말들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까불지를 말던가, 넘어지지를 말던가!


민망함과 자책 사이,

스며드는 웃음은 왜 그리도 귀여웠는지.


집에서 확인한 내 엉덩이는

시퍼렇게 변해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쥐구멍에 숨지 못했다.


불행히도 나의 수치심은 커져만 갔고,

다행히도 그대의 웃음은 만개했다.


다행이라 여기며 미소 짓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렴 어떤가.

나로 인해 네가 웃고 있는데.



쥐구멍에 숨고 싶은 순간은

대개 숨지 못한다.


강제로 그 순간을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깊은 고난을 안겨준다.


잠시 떠올려 보자.

쥐구멍에 숨고 싶었던 순간을.


어우, 소름 끼친다.

수치가 몸을 타고 올라온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금방 이겨낸다.


묘하게도, 대부분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아, 물론 웃음에는 종류가 많다.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상황과

창피함의 다른 감정으로의 전이.


이것이 이른바 쥐구멍 창피의

핵심적인 개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피할 수 없는 마주함을

피하지 않는 마주함으로.


숨고 싶은 창피함을

미소를 띤 웃음으로.


다르게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치부를 들키는 것과 달리,

쥐구멍 창피에는 좋은 의도가 담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기반으로,

아쉬움이 남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다시, 마지막으로 떠올려 보자.

나의 쥐구멍 창피를.


어우, 여전하다.

그리고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떠올려 보자.


그 마음이 어떤가.

나는 몽글몽글한, 따뜻함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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