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 제발.

by 로그모리

나는 좌식 식당이 싫다.

신발을 벗어야만 하니까.


깔창은 내 자존심이고,

곧 나의 몸이다.


"어? 여기 맛있어 보인다!"


'그럼 가자!'


문을 열었을 때,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들이 보인다.


왜.

대체 왜.


'신발 넣어두고 갈게, 먼저 들어가.'


"진짜? 고마워!"


레이디 퍼스트.

이 순간만큼은 이 단어가 그렇게도 고마웠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최적의 동선을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순간,

나는 닌자처럼 움직인다.


제발, 나의 불안함을 모르기를.

제발, 그저 메뉴만 생각하기를.



별 거 아닐지 몰라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이 순간에 따라

나의 자존감은 하늘과 땅 사이 진자 운동을 한다.


이게 뭐라고 그토록 간절했는지,

왜 그리도 잘 보이고 싶었는지.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기에,

나의 결핍을 감추고 싶었다.


이유가 그것일까.



잠시 얘기를 거쳐 가자면

한국식, 미국식 교육이 다르다고 한다.


한국은 약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미국은 강점을 강화하는 형태로.


교육과 관련된 업을 하면서

나는 이 지점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장단점이 있고,

중도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약점을 채우는 게 익숙한 이에겐 강점의 강화를,

강점을 채우는 게 익숙한 이에겐 약점의 보완을.


개인의 측면에서도,

앞서 말했던 매력의 측면에서도 비슷하다.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꽤 잘 생겼다고 생각한다.


뭐 비율도 꽤.

머리도 꽤 좋다.


근데 뭐랄까,

키는 내가 채울 수 없는 느낌?


노력으로 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내게 콤플렉스로 다가온 것 같다.


지금은 생각해 보면 창피하지만

한 때 유행한 12cm 키높이 신발도 신어봤다.


어.. 그랬다.

그것만 채우면 완벽할 줄 알았다.



현재 시점으로 보면

나는 이제 깔창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차피 악을 써봐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니 얼마나 좋은지.

대신 집착하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물어본 적이 있다.

나를 왜 좋아하는지.


당연하게도 키는 없었고.

외모를 보기도, 대화를 보기도, 배려를 보기도 했다.


각 이유마다 충격도, 기쁨도, 상처도

동시에 버무려져 있다.


키링 취급, 챗지피티 취급, 가스라이팅 등등

물론, 상처보다 힘이 된 친구도 있었지만.



각각 대답은 달랐으나,

나의 결핍은 절대 장점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무형의 것들이 나의 장점이었고,

어려우면서 동시에 고맙고 집중하게 됐다.


나의 인간으로서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공부나 교육적 시선을

나에게, 인간관계에 접한 지점이었다.


보완이 아닌 강점을 살려야 한다는

결과적인 배움을 남겼다.



요즘은 험한 길을 걸어야 할 때,

깔창을 사용한다.


돌이 신발을 뚫고 발바닥을 때릴 때가 있다.

살기 위해.. 쓴다.


가끔 생각난다.

나는 이게 목숨줄이라 생각했었는데.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묘한 추억과 아찔한 창피함을 남긴다.

혼자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기분. 혹시 알려나.



나의 그 기억이, 그 감정이

결국 지금의 성장한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약점에 집착하지 않고,

강점을 살리는데 에너지를 쓴다.


유형의 것도 중요하지만

무형의 것에 더 집중한다.


여전히 나는 창피한 순간들을 마주하지만

보다 빠르게 배움으로 넘어가며 살고 있다.

이전 06화창피, 쥐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