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건 늘 짜릿하고 재밌다.
새로운 경험이라면
무조건 해야만 했다.
신선한 기분이 든다면
무엇이든 감안하고 했다.
일종의 도파민 중독이었을까,
경험에 대한 끝없는 갈증이었을까.
아, 지금도 여전하다.
새로운 건 짜릿하다.
익숙함은 다소 지루하다.
반복되는 것들의 공통점은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해진 틀과 규칙 아래
똑같은 행위를 해야 한다.
이런 반복은 스트레스가 되고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다.
어쩌면 보리차는 익숙함에 가깝다.
맥주의 시원한 타격감이 없으니.
보리차를 마시고 나서
커피도 따뜻한 걸 찾았다.
손이 얼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던 내가
굳이 후후 불어가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물론 특유의 매력이 있긴 하나
사실 여전히 아아를 선호한다.
그래서 아아를 마시며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이게 큰 변화를 만든다.
맥주 대신 보리차를 마시면서
새로이 정돈되던 모습들이
하나 둘 거짓말처럼 가려지고
이전의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3일쯤 흘렀을까,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변화에 적응하며 만족하던 중에
이토록 쉽게 뒤집혀 버리다니.
다시, 보리차를 텀블러에 담는다.
아아 대신 담아낸 보리차는
적당량을 마시고 뜨거운 물을 추가한다.
진해도, 연해도 아무래도 좋은
보리차의 향을 맡으며 따스히 삼킨다.
일종의 패턴일까.
다시 차분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기분.
돌아보면, 습관처럼 아아를 마시던 기간은
다시 예민하고 화가 많이 나던 것 같다.
기분은 오직 내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새삼 새겨내며 감정의 주인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이내, 따스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적어본다.
대개 성장에 관련된 것들은
익숙함을 이겨내며 찾아온다.
다시, 정확히는 지루함을 견디며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한다.
지루한 순간들을 견뎌내는 건
내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흐름과 메커니즘은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고
어차피 뻔하고, 어차피 발전할 수 없다며
관심을 두는 것을 죄인 것처럼 여겼다.
사실, 여전히 어렵기는 하다.
절대로 자연스레 할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보리차를 식히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해 본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상황을 만들면 될 일이니.
스스로 원하지 않기에
상황이 하도록 만든다.
가장 단순한 루틴 하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샤워 전 푸쉬업을 한다.
따뜻한 물을 틀어두고,
물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며
푸쉬업을 하고 샤워를 한다.
처음엔 20개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한 번에 70개는 가뿐하니.
고작 1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 쌓여
꽤나 큰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샤워는 할 것 아닌가.
겸사겸사 운동도 하는 거고.
이렇듯 무조건 해야 하는 일상 아래
내키지 않지만 해야 하는 지루함을 끼운다.
그리고 재밌는 건 몇 번 하다 보면
은근히 즐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가끔 이상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묘하게 즐거운 나를 발견하는 재미란.
지루함을 재밌게 만드는 건
더 큰 지루함에 있을 때다.
시험 기간에 뉴스와 다큐가 재밌던 경험,
아마 모두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회사의 점심시간이 딱 그렇다.
이 시간에 읽는 책이 어쩜 그리도 재밌는지.
불필요한 대화에 끼고 싶지 않고
나를 위해 확보된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책 읽는 사람에게
쉽게 욕하지 않는 본능이 있다.
(아 물론, 돌려서 욕먹어본 적이 있다. 횡설수설 하더라.)
회사가 너무도 재밌고 즐겁다면 아니겠으나,
책 한 권은 챙겨두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어찌 그리 잘 읽히고 재미있는지.
집에선 이어 읽기 힘들어질 정도다.
억지로 하는 건
결국 무너진다.
마음보다도 몸이 더 잘 안다.
내키지 않는 것을 이겨낼 수는 없다.
그래서 몸이 허락하는 선까지만
내키도록 만들어 보려 한다.
눈 딱 감고 1분 정도는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다.
보다 강하게 말하면
내 의지력은 1분짜리다.
그래서 1분짜리 운동을 하고
1분짜리 독서를 한다.
지금은 제법 괜찮은지
3분짜리 운동과 독서가 되었다.
몸도 적응해 간다.
이제 3분짜리 의지를 가졌다.
3분짜리 운동과
3분짜리 독서를.
언젠가 조금은 더 길어질지도,
그리고 여전히 내키는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