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輪紀行] ep. 10 경주 김유신묘에서 무령왕릉
그러나 계절은 또 돌아온다. 나는 오토바이 위에서 그 모든 것을 지난다.
경주의 4월은 온통 벚꽃으로 뒤덮인다. 어느 길을 가도 꽃잎이 구름처럼 피어 있고, 하얀 꽃비가 바람에 흩날린다. 나무마다 가지마다 꽃이 터져 나와 하늘을 가린다. 땅은 꽃잎으로 덮이고, 바람이 불면 눈처럼 흩날린다. 도시의 주인은 잠시 꽃이 된다.
대경로를 달린다. 김유신묘에서 무열왕릉까지 이어지는 길. 양 옆의 벚나무들이 가지마다 꽃을 피워내고 있다. 왕릉 옆의 나무들도 예외가 없다. 돌무덤 위에도, 봉분의 풀 위에도, 흩날린 꽃잎이 내려앉아 있다. 천 년 전의 피와 전쟁, 권력의 다툼과 몰락의 이야기는 모두 땅 속에 묻혔지만, 벚꽃은 지금도 흩날리고 있다. 권력은 무겁고 잔인했지만, 꽃은 가볍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권력의 무게를 이긴다. 꽃잎은 한 철이지만, 그 계절은 역사보다도 더 길다.
벚꽃은 오래 피지 않는다. 며칠의 절정이 지나면 바람에 흩날리고, 비에 젖어 떨어진다.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내고, 꽃은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그 며칠 동안, 경주는 가장 눈부시다. 찰나가 길 위를 지배하는 시간. 사람들은 그 짧음을 아는 듯이, 나무 아래에 모여들어 사진을 남기고, 아이들은 꽃비 속에서 뛰논다. 웃음소리와 셔터 소리와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한꺼번에 섞인다.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지난다. 꽃잎이 바퀴에 붙고,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바람에 흩날린 꽃잎이 시야에 와닿았다가 흘러내린다. 나는 그 꽃잎 하나에도 계절의 무게를 느낀다.
왕릉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로 쌓은 무덤은 천 년을 버티고, 사람의 이름은 그 무덤 아래 잠들어 있다. 꽃잎은 바람에 실려 며칠 만에 사라지지만, 왕릉은 천 년을 견뎠다. 그러나 그 천 년을 견딘 돌 위에 지금 꽃잎이 내려앉아 있다. 순간과 영원이 같은 자리에서 겹쳐진다. 나는 그 길을 달리며, 영원과 찰나를 동시에 본다.
내 어깨에 내려앉은 꽃잎은 금세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그러나 그 꽃잎이 흩날리는 바로 옆에서, 역사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람은 사라지고, 권력은 흩어졌으나,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꽃은 또 핀다. 꽃잎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흙은 남는다. 그러나 내년이 오면 흙 위에 또 꽃잎이 내려앉을 것이다.
경주의 4월은 천 년의 무게와 며칠의 가벼움이 한 자리에 축적된 풍경이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바람을 맞고, 꽃잎과 세월을 함께 받는다. 그 순간 시간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다만 흘러간다. 꽃은 떨어지고, 사람은 사라지고, 무덤은 남는다. 그러나 계절은 또 돌아온다. 나는 오토바이 위에서 그 모든 것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