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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생 35

나는 한때 신문배달소년이었었다... (3)

by 특급썰렁이

그때였다. 수십 개는 족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신문 뭉치들을 사무실 앞에 내려놓고 나서... 그리고 그 뭉치들을 다시 사무실 안으로 옮겨놓는 작업들을 겨겨우 마치려던 그 어간이었던 거 같다. 덜덜덜덜 둔탁한 소음을 내며 소형 스쿠터 한 대가 사무실 옆으로 다가와 서는 게 아닌가. 순간 알 수 없는 서늘한 느낌이 내 등허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험상궂다 못해 영화 외O부대에서나 봤음직한 다소 기분나쁜 인상에... 오히려 왜소하고 좁은 어깨... 국민학교 5학년인 나보다 조금 작은 키에... 어깨춤에는 가늘고 기다란 가방 같은 걸 차고 있는... 허름하고 시시껄렁한 옷차림의 얼굴 시커먼 아저씨가 스쿠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대로 나와 내 친구를 번갈아 여러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만... 너네들이로구나. 제발로 신문배달하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했다는 바로 그 녀석들. 뭐 굳이 "신문배달 못 하면 절대 안 되요. 꼭 쫌 하게 해 주세요, 제발" 이라고 부탁했던 적도 없는데... 이 아저씨는 마치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듯 양껏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었다. 나와 내 친구를 올려다 보면서. 아. 내일부터는 최대한 굽이 낮은 운동화를 찾아서 신고 여기 와야겠다. 아니면 다른 친구한테 빌려서라도. 나를 올려다 볼 정도로 작고 볼품없는 아저씨였지만 그 눈빛은 흡사 시라소니마냥 매섭고 날카로워 보였다. 아니 웬지 모르게 교활하고 약삭빨라 보인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서늘한 눈초리에서 흘러나오는 그 눈매가 참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 사람은 지국에서 유일한 총무 아저씨였다. 그 시절 신문 지국 총무는 상상외로 은근히 막강한 파워를 소유한 계층이었다. 본사에서 매일 같이 내려오는 신문들 부수나 확인하고 매월 신문배달하는 직원들 월급이나 전달하는 이외에는 그다지 하는 일이 없는 걸로 보이는 지국장님 그 다음으로 가장 높은 사람이 총무님이었다. 총무님은 본인이 맡은 구역에 신문배달하는 것은 물론 신문배달직원들이 배달하는 경주시내 전역의 신문 구독자들로부터 매월 구독료를 손수 수금하는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뿐 아니라 행여나 누가 중간에 이런저런 사유로 갑자기 그 날짜 배달일을 뺴먹는 일이 생길 때면 그 대신 도맡아서 언제든지 배달을 문제없이 마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백업맨 그 자체였다. 그만큼 경주시내 전체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고 어느 가정집 어느 가겟집에서 신문을 매일 받아보는지 아닌지 여부까지 소상하게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 있는 능력자 중에 상능력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설령 지국장님인들 총무님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길가다가 개라도 나타나면 가던 길을 제쳐두고 멀찌감치 둘러갈 정도로 키에 비해서 유난히도 겁이 많던 나는 처음부터 그 총무님이 무서웠다.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야단을 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저 사람한테 혼날 일 없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만큼 무서워했던 거 같다. 나와 내 친구는 그 날 자전거를 타고 그 총무님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내가 신문을 돌려야 하는 구역부터 하나하나 돌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의 구역은 시내였다. 나는 가정집이 즐비한 동네에서 멋들어지게 쫙 배달을 하고 싶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쭉 이어진 가정집 위주로 배달을 하게 되면 몇 발짝 못 가서 이내 다음 집에 도달하게 되니 짧은 시간 안에 손쉽게 배달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정집 배달할 때면 신문을 세로로 잘 접어서 바로 집 대문 앞에다가 간지나게 던져주기만 하면 되니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거 웬일인가. 시내에는 모조리 가겟집만 그득했다. 손쉬운 가정집과는 달리 가겟집은 그 입구 앞에 던져놓는 일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드시 자전거에서 내려서 가지런히 신문을 접은 상태 그대로 입구문을 열고 들어가 가게 주인한테 손수 전달해야만 했다. 쑥기 없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던 나로서는 이건 육체노동이라기보다는 정신노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찌 보면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나는 낯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만큼 때로는 극도의 수줍음과 과도할 정도의 부끄러움을 동시에 장착한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아, 이 일을 어떡하나. 이래 가지고는 배달은 도저히 못할 꺼 같은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배달일을 배우기 시작한 첫날부터 배달하러 가기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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