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36
나는 한때 신문배달소년이었었다... (4)
나에게 배정된 배달부수는 약 70부였던 걸로 기억된다. 생전 처음 배달하는 것치고는 웬지 조금 많은 듯한 느낌이 들 만큼 꽤나 많은 숫자였다. 아니 버거울 정도로 혼자 하기에는 다소 벅찬 부수였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리라.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부담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신문배달이 결국에는 시작되고야 말았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집에 책가방만 훌쩍 던져놓고 그 즉시 지국 사무실로 향했다. 학교가 쬐금이라도 늦게 마칠라치면 걷기보다는 집에서부터 지국까지 닥치고 전력질주가 올바른 선택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그 독사같은 총무님 손에 박살이 날 지도 모르니... 혼날 일 없도록 사전에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내 신상에 도움이 될 것임은 틀림없었다. 지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배달할 부수 70부에다가 여분의 신문을 약 10부 정도 더 챙겨야만 했다. 도합 80부를 가지런히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옆편에 미리 준비된 전단지 여러 묶음들을 신문지 옆에 배치했다. 그 시절에는 뭐 그리 전단지들이 많았는지... 웬만한 신장개업집들은 이런 신문 속에다가 끼워넣는 전단지를 통해서 가게 홍보를 하곤 했었다. 특히 인기있는 조간신문들은 광고 단가가 제법 비싼 편이라서, 큰 돈 안 들이고 적당히 광고하고 싶어하는 가게 주인들은 다소 저렴한 석간신문 광고를 선호했다. 그래서 어떨때면 그다지 두껍지 않은 신문지보다 그 안에 끼워넣을 전단지들의 총 두께가 몇 배는 더 두꺼울 정도로 전단지 갯수가 많은 날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메인인 신문지보다도 더 중요한 서브였던 전단지들을 단 한 장이라도 빠뜨려서 누락하거나 혹은 두 장씩 넣어서 중복되는 낭비를 하거나 하면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문지 사이사이로 빠짐없이 전단지들을 한 장 한 장 효과적으로 집어넣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신중하고 정확 무오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적어도 20~30분 가량 전단지 소위 신문지 속지들을 넣는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윽고 신문배달하러 나갈 채비를 재빠르게 마쳐야 한다. 초기에는 배달해야 하는 가게만 해도 무려 70여곳이나 되는 까닭에 그 많은 가게 이름을 단번에 외우기가 힘들어서, 시험 칠 때 친구들이 곧잘 쓰던 컨닝 페이퍼마냥 갱지 한 장에다가 1번부터 70번까지 지나가는 순서대로 일일히 가게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그 쪽지 하나만 잘 들고 다니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무사히 배달을 완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쪽지를 매번 쳐다보면서 가게들을 들락날락 나는 신문 배달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가게는 입구도 제대로 찾지 못해서 입구 찾느라 한참을 헤메였던 적도 있고, 어떤 가게는 이번 달부터는 신문 구독 안 한다고 했는데 왜 또 가지고 왔냐고 타박을 받기도 했다. 그저 말로만 하는 타박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루는 2층에 위치한 다방이었는데, 계단을 신나게 걸어올라가 입구문을 열고 신문을 들이밀자마자 가게 주인의 욕지꺼리가 한 바가지 쏟아졌다. 너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냐고 다짜고짜 삿대질이 시작되었다. 어린 마음에 하마터면 한 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라 역시나 뒷통수가 얼얼해져 왔다. 신문 가져왔다는 그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얻어맞은 것이었다. 신문배달소년이 신문배달한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이었을까. 단지 이유없이 한 대 맞은 것 말고는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하다고 몇 차례 머리를 조아리고는 도망치듯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러웠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도 잠시... 계속해서 신문배달은 계속해야 했다. 부모님 마음 아파하실까봐서 차마 집에다가는 아무에게도 이런 사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정말 어이없는 것은, 그날 배달을 다 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와서 총무님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너 내일부터는 그 가게에 다시 배달하지 마라" 는 대답을 원했건만, 총무님은 내게 이런 당부를 하셨다. "어떻게든 너는 배달만 하면 돼. 무슨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그러면 내가 나중에 그 구독료 다 수금해 올테니까. 내일부터는 그 가게 문 열고 안에다가 직접 가져다주지 말고... 주인 몰래 문 앞에다가 놔두고 오면 돼, 알겠지?" 하는 게 아닌가. 정말 하기 싫었지만 쉽게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생전 처음 보자마자 나를 때린 그 가게 주인도 무서웠지만, 매일 마주쳐야 하는 총무님은 개천에서 내 다리에 들러붙은 찰거머리보다도 더 소름끼치는 그런 존재였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