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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생 38

나는 한때 신문배달소년이었었다... (6)

by 특급썰렁이

그렇다고 해서 신문배달하는 내내 슬픈 일들만 있었던 건 또 아니었다. 여름쯤 시작한 신문배달은, 어느새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 사이 몇 가지 소소한 변화도 있었다. 나와 함께 배달을 시작했던 내 친구 OO욱이는 자기 부모님 몰래 한 1, 2 주 동안 지속하던 끝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그 친구 어머니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은 모든 사실을 실토하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다시 본연의 삶 즉 육상 꿈나무의 자리로 돌아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친구는 교내 달리기대회는 물론이요 경상북도 도 대회에 나가서 또다시 당당하게 입상을 하기까지 하였다. 잘된 일이다. 아무래도 그 친구는 계속 육상이나 하는 게 맞았던 거니까. 집도 잘 사는데 굳이 계속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배달 시작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이서 시작했던 그 과감한 실행은 나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더 외로웠던 거 같다.

이제는 배달 일이 손에 익다 못해 아예 이골이 날 정도로 몸에 딱 붙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 못 외워서 쪽지를 흘끔거려가며 더듬더듬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사방 천지를 헤메이던 나의 발걸음이 어느새 간결 명확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1시간은 고사하고 2시간이 다 되도록 배달을 못다 끝내어서 매번 배달을 마치고 나서 지국 사무실에 돌아올 때마다 내가 맨 꼴찌였었는데... 각자의 배달원들이 모두 다 배달을 완료한 것을 하나하나 다 확인한 뒤에야 퇴근하시곤 하던 지국장님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송구스러움이 신문지 뭉치마냥 하루하루 쌓여갔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햇병아리 초짜 배달원 티를 채 못 떼내어서 그랬던 내가... 훌쩍 발전해서 이렇게 에이스 베테랑 배달원으로 성장했던 것이었다. 날이 거듭될수록 혹시나 신문배달한답시고 학업 성적 떨어졌다는 소리는 나의 그 알량한 자존심에 차마 듣기 싫어서, 오후 3시부터 시작하면 적어도 저녁식사 직전인 5시 혹은 6시는 다 되어서야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밥 먹고 나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았다. 아. 아니 달랑 두 칸 좁아빠진 우리집에서는 막내인 나한테까지 허용될 공간 따위는 없어서, 애시당초 내 책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었다. 내 책상이 아닌 큰누나 책상 앞에 앉아서 밀린 숙제도 하고 학습지 아줌마였던 어머니 친구가 거저 주신 학습지도 잊지 않고 풀곤 했다. 덕분에 학원 문턱 한번 밟아본 적 없던 나는 여전히 학급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문배달의 또다른 효용은 아니 제일 중요한 결과물은 바로 "월급" 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명실상부한 "나의 생애 최초 직업이자 최초의 돈벌이" 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1989년 국민학교 6학년 당시 석간신문의 한 달 배달비는 고작해야 "일금 3만원" 이었다. 앞서 잠깐 설명하였듯이, 1개월에 최소 10만원 많으면 13만원까지 받기도 한다던 조간신문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이 초라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조간신문은 새벽 일찍 다른 사람들이 곤히 자는 시각에 신나게 배달만 하면 그만이었는데 반하여... 석간신문은 학교 마치고 저녁식사 이전까지 돌리다 보니, 1) 찻길에 지나다니는 차들 피하기에도 급급한데다가 심지어 차랑 부딪히는 접촉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2) 배달하느라 잠시 잠깐 자전거를 세워놓은 그 짧은 틈에 홀라당 자전거를 신문지와 함께 통째로 훔쳐가서 난감한 사례도 종종 있었으며, 3) 다소 꾀죄죄한 모습으로 자전거 뒤에다가 잔뜩 신문지들을 실고 갈라치면, 길거리 곳곳에서 아는 친구나 아는 아버지 친구, 아는 어머니 친구를 마주치게 되어 괜히 부끄럽고 민망해질 확률이 조간신문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상당히 높았었다. 간혹 총무님이 자기 대신에 신문 대금 수금까지 맡기는 때도 많았다. 래서 총무님이라면 어쩌면 먹지 않았을 온갖 욕을 나이 어린 나에게 해대는 어른들을 여럿 만나기도 하였다. 그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경험들을 한 것 같아서... 지금 그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면서도 가슴팍이 알싸하게 아파오는 것만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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