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생 9
여중과 담장을 공유하는 남중 (7)
경주시 아줌마들의 치맛바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었다. 역시 입학한 1990년 3월초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설문조사지 한 장씩 나눠주셨다. "교복 착용여부 찬반투표" 였다. 내용인즉슨, 두발자유화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교복을 다시금 부활시키자는 내용이었다. 사복을 착용하게 되면 학부모들의 경제적인 부담과 더불어서 학생들이 외모에 신경을 써서 공부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나 뭐다나 ㅜㅜ 암튼 그런 취지의 내용이었고, 그러한 연유로 하루빨리 교복 착용을 의무화해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편리함을 도모하자는 차원이기도 하였었다. 말이 좋아 찬반투표이지 이미 답정너 "찬성" 으로 기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이들은 웅성웅성대기 시작했다. 역시나 담임선생님도 "너네가 아버지 어머니 몰래 반대로 투표해서 제출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교복 부활이 계획되어 있으니까 괜시리 허튼 짓 하지 말고 그냥 찬성에다가 동그라미 쳐라이." 하며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하지말자는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설문조사지 배포 바로 그 다음날, 상당히 높은 득표율로 "찬성" 으로 결정되었다는 결과만을 우리는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무슨 공산당도 아니고... 학생들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된, 학생들의, 학생들에 의한, 학생들을 위한 "찬반투표" 는 그런 식으로 마무리되었었다.
찬성 결정을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불과 1주일도 안 되어서 교복 스타일 모델 선정을 위한 회의가 곧 열리게 되었다. 참고로 나는 1학년 2반에 배정받았는데... 카리스마 있는 김영O이라는 약간 뚱뚱한 아저씨 몸매의 친구가 학급반장을 맡았고, 약간 촉새 같은 삐쩍 마른 OOO 친구가 학급부반장을 맡았다. 나는 학급 친구들에게 별로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라서 굳이 반장, 부반장 선거에 출마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반장, 부반장 선거 직후에 학급 서기를 뽑는 시간이 있었다. 반장/부반장 선거와 달리, 학급 서기는 글씨를 잘 쓰는 것이 특히 칠판에 판서를 하는 글씨가 눈에 잘 띄고 명확해야 하는 그 나름은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래서 학급 친구들의 투표로써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담임선생님이 직접 뽑아주시는 것이 그 동네 관례였다. 담임선생님은 모든 학급 친구들에게 갱지를 나눠주신 뒤에 선생님이 선정한 한 문장을 각각 갱지 위에 적어보라고 하셨다. 이내 거둬진 갱지들을 쭈우욱 둘러보신 뒤에 후보들이 딱 2명 선정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아까 반장이 된 그 김영O와 나 이렇게 단둘이 뽑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반장으로 선출된 김영O 대신에 내가 학급 서기 최종후보가 되었고, 나의 판서 글씨를 본 담임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나는 최종적으로 학급 서기에 임명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전교의 모든 각 반의 학급 서기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총학생회 대표 서기를 뽑게 되는 자리가 마련이 되었었다. 거기에서 나는 또다시 총학생회 대표 서기 즉 자칭 "서기장" 으로 등극하였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교복 스타일 모델 선정을 위한 회의" 에는 전 학년 전 학급들의 반장들만 참석하는데, 유일하게 반장이 아닌 나만 총학생회 대표 서기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었다. 그것도 일종의 전교 전체회의라서 회의록을 수기로 기록할 서기가 있어야 한다나 뭐다나... 그 회의에서는 교복 디자인과 색상을 결정하는 자리였고,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스타일과 다채로운 색상으로 화려한 교복들로 즐비한 별도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학급 반장들과 나 각자가 원하는 모델 1개씩을 각각 고르기만 하는 것이었다. 우리 각자는 앞으로 3년간이나 입게 될 교복인지라 매우 신중하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모두의 의견을 주섬주섬 모아보니 대략 두세개 정도의 모델들로 압축이 된 듯하였다. 그러나 웬걸... 잠시 뒤에 해당 교복 모델 선정의 담당선생님인 교무주임 쌤이 들어오더니... "너네가 백날 고르고 골라봤자 어차피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 선생님들이 너네한테 제일 좋은 걸로 벌써 결정해 뒀고, 오늘 이 투표 역시 일종의 요식행위 같은 거니까 너무들 신경 쓰지마라 ㅋ" 너무너무도 어이없게도 우리 학생들의 의견 같은 건 애시당초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1주가 지난 뒤에 전교생들에게 공개된 우리의 새 교복 모델은... 군청색 마이에 쥐색 기지바지 ㅠㅠㅠ 전형적인 남자 교복 그 잡채 ㅜㅜㅜ 정말 무채색에 가까운 그 색상은, 중학생들이 공부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무미건조한 삶으로의 초대라고나 할까... 아니 암울하디 암울한 중학교 3년 간의 내 미래를 사전에 미리 보여주는 듯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