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생 8

여중과 담장을 공유하는 남중 (6)

by 특급썰렁이

신O중학교에 입학하고 딱 1주일이 지나자마자 어머니회에서 난리가 났단다. 그 난리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왜 이 학교는 입학한 지 1주일이나 경과하였는데도 어찌하여 야간자습을 시작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지금보다 34년 전인 1990년에도 이미 경주시 학부모님들은 서울 못지 않은 교육열로 들끓고 있었나 보다. 암튼 어머니회로부터 쏟아지는 맵디매운 민원들에 시달리던 학교측에서는 그로부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중학교 1학년 신입생들의 야자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덕분에 우리 신입생들은 도대체 야자시간에 무슨 공부를 해야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매일 18~20시 야간자습에 돌입하게 되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같은 걸 하면서 공부하고는 자체 담장을 형성하며 마냥 놀기만 힘쓰던 우리가 갑작스레 공부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인생이 끝날 때까지는 결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공부의 길" 에 쑤셔박혀 등떠밀려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한번 들어오면 죽지 않고서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그 "입시의 길" 을 포함해서...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하루 종일 수업하다 보니 오전 1~4교시(8~12시)/점심(12~13시)/오후 5~8교시(13~17시)/저녁(17~18시)/야자(18~20시) 이렇게 최소 12시간을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국민학교 때 신나게 놀기만 하던 친구들은 물론,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들 그룹마저 갑작스레 시작된 야간자습에 버거울 수밖에 없긴 마찬가지였다. 민학교 다닐 때까지는 영어공부라고는 고작해야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정도만 다 암기하고 알파벳을 펜글씨로 흘려쓰는 "펜글씨 교본" 한 권 써본 것이 전부였다. 이런 것도 선행학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80년대 당시에서부터도 벌써 "영어 & 수학과목 선행학습" 이 유행이라서, 돈깨나 있는 집안 자녀들은 국민학교 4학년에 이미 중학교 1학년 영어/수학 진도를 떼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나야 당연히 없는 집 자손이니 선행은 고사하고 공부 관련 학원 근처도 못 가 봤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알파벳 겨우 기억하는 수준의 영어라는 것에 걱정이 되었는지, 큰누나가 최소한 이것 한 권은 떼고 입학해라고 하여 "리딩 튜O" 인가 "리더스 다이O스트" 인가 그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 무슨 독해 문제집 비스무리한 것을 사서 풀어봤던 기억은 어렴풋이 떠오른다.

암튼 중학교 배정 직후에 치뤄진 "반 배치고사" 에서 나는 처절하게 망친 듯 싶었다. 반 배치고사 성적 전교 1등부터 1반, 2반 순서대로 배정된다는 소문이 쫙쫙 돌았다. 나는 어떻게 1학년 2반이 되었는데... 전교 2등일리는 만무하고 1학년이 총 10반까지 있었으니 아마도 12등, 22등, 32등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입학 이후에 잘하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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