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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스승의 날에

고맙습니다

by 제이

살다 보면 내 곁을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
그중 어떤 이로 인하여 바뀌는 내 인생.
그런 분들 중 한 사람- 내 여고시절 은사 K선생님.

영어 선생님이셨던 그분은 나로 하여금 영어를 즐겁게 공부하게 했고 때로는 무료 개인 교사셨고 힘든 사춘기를 잘 넘어가게 하셨다.

작은 키에 뚱뚱한 찐빵 같은 외모와 어눌한 말씨.
그래서 자주 영어를 번역하시다 보디랭귀지를 쓰셔야 하셨다.
"얘들아, 영어 공부는 말이지 단어만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야, 소설책들을 읽어야 해."
술을 무척 좋아하셨다.
어떻게 아느냐고?
요리실습이 있는 날, 실습한 음식을 담임이 시식하는 시간, 선생님은 술이 준비되지 않으면 오시지 않으셨거든.
학생이 주전자를 들고 가서 선생님 드실 막걸리도 사 오던 참 낭만적 시절.

선생님은 1, 2학년 때 담임이셨고 나는 그 반의 반장이었다.
선생님은 다른 과목 수업 시간 중 가끔씩 뒷문으로 나를 부르신다.
"내 만년필 못 봤나? "
"성금 명단 냈나?" (예전에는 웬 성금 모으는 게 그렇게 많던지. 수해, 불우이웃, 크리스마스실 성금 등등. 반장이 거둔다.)
나는 선생님의 시험 경향을 꿰뚫고 있어 좋은 성적이 나왔다.
선생님이 좋으니 영어가 더 좋고 예습 복습을 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체크해 둔다.
수업 후 앞문으로 나오시는 선생님을 뒷문으로 나가 붙잡고 체크한 것을 질문하면 자상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교사가 댁에서 영어 과외를 했다.
과외받을 여유가 없는 내가 원 포인트 무료 개인 과외를 받은 셈이다.

선생님은 무어 하나 똑 부러지지 못한 성격이셨다.
학급 경영도 대강대강, 청소관리도 대강대강, 성금 모으기도 대강 대강.
나 또한 그렇게 똑 부러지는 성격이 아니라 학급에 들어오는 과목 선생님들은 "이반은 반장이랑 담임이랑 닮았구나." 놀리셨다.
돌아가면서 하는 방과 후 청소시간.
선생님의 느슨한 성격을 악용해 청소 시간 뺑소니치는 애들도 가끔씩 있었다.
어느 날, 청소 당번인 한 친구가 뺑소니치다 선생님께 딱 걸렸다.
누구야. 부르는 소리에 후다닥 도망치는 친구.
부한 체격의 선생님은 빗자루를 들고 슬로 템프로 쫓아가고 친구는 메롱하면서 잽싸게 이리저리로 도망쳤다
그걸 보는 다른 애들은 박장대소.

K 선생님이 졸업하신 그 대학 그 과에 나는 지원했다.
면접날 교수님의 질문은 "K 선생님 잘 계시나?"
대학 졸업 후 고향에 돌아와 영어교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내가 담임하는 반에 선생님의 따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이 학부형이 되셨다.
선생님께 배운 것을 선생님 따님께 가르친다.
인연!

친정에 갈 때 한 번씩 댁을 찾아뵈었다.
내가 장애 아들을 가졌다는 말에 슬퍼하시던 선생님.
늦게 신앙을 가지셨다.
언젠가 친정에 갔다가 뵈러 가겠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오늘은 안 되겠구나."
나중 알고 보니 그때 말기 암이셨다.
억지로라도 그때 가 뵈셔야 했는데...
그 통화가 선생님의 마지막 음성.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우리들의 사춘기 시절을 붙잡아 주셨던 선생님.
오직 공부에 전념하도록 도와주셨던 선생님.
과외 열풍이었던 그 시절, 더 이상의 영어 과외가 필요 없게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때 가르쳐 주신 영어로 가정교사로 과외교사로 대학을 마칠 수 있었어요.
그때 그 영어가 신학교, 대학원 시험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선생님께 배운 그 영어가 너무 귀하기에, 이젠 그것을 나누고 싶어 소년원 아이들 검정고시 준비를 도와주었어요.

특별한 훈육이나 고상한 가치를 일깨워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냥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그 넉넉한 사랑을 받아 이나마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카네이션 한송이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50년 전 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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