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천사들
'너 걱정 근심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
(찬송가 382장)
이 찬양을 부르며 가정예배가 끝났다.
그리고 남편은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이년 예정으로 프랑스로 떠났다.
1983년 늦은 봄이었다.
두 돌이 채 안 된 첫째.
태어난 지 이제 반년 된, 누워만 있는 장애인 둘째,
그리고 허약한 부인, 이 세명을 남기고...
사실 부인은 둘째 아이의 출산 후, 감당하기 힘든 절망스러운 하루하루의 현실에서 남편이라도 그곳을 벗어나길 원했다.
마침 나라와 회사에서 지원하는 해외 프로그램에 남편이 합격했다.
그래서 남편 등을 떠밀었다.
막 두 살 되려는 첫째 딸의 재롱. 그때 아니면 볼 수 없는 생애 최고의 딸의 귀여운 재롱들을 남편은 놓칠 것이지만.
아빠가 머나먼 곳에 있을 때 어쩌면 아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당시 두 번의 장출혈로 혼수상태로 입원한 적이 있고
원인 모를 복통으로 아예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 보니 저 체력.
남편이 떠난 후 나는 현관문을 밤중에도 잠그지 않았다.
어린 딸은 아직 현관문을 열지 못하는데 혹시 내가 출혈하여 혼절하면 애들은 집 안에 갇히게 되니까.
가장이 빠진 우리 세명은 한동안 어떻게 살까?
이 두 애를 데리고 집안일은, 장 보기는, 교회 갈 때는, 누구가 아프면...?
자가용은 언감생심이던 그 시절.
주께서 지켜주시니 근심 걱정 말라고?
그때가 1983년.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맞다. 맞다. 맞다...
주께서 지켜주셨고 도와주셨다.
넘치게...
그런데 주님의 손이 아닌, 천사가 아닌, 내 주위의 인간 천사를 통해서다.
남편이 떠난 하필 그 밤, 거실 형광등이 고장 났다.
앞집 아저씨가 흔쾌히 고쳐주셨다.
이웃에 사는 교회 구역분들이 때마다 음식을 날랐다.
"김치를 담았는데 맛보시라고..."
"국을 끓였는데 조금 가져왔어요."
"전을 부쳤는데, 나물을 무쳤는데..."
예배 가는 날, 교회 봉고차가 집 앞에 서면, 작은 애는 업고 큰 애는 손잡은 나를 보고 누군가가 얼른 차에서 내려 큰 애를 케어해 주신다.
예배 중에는 누군가가 작은 애를 안아주신다.
어느 날
뒷산으로 구역 야외 예배로 나섰다.
십여 명 어른 아이들이 맛난 것을 잔뜩 준비해 갔다.
어린이집이란 용어도 없던 시절,
애들은 종일 놀이터에서 친구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종일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동참했던 한 아빠, 아들을 업으시더니 얼른 하산하셨다.
평일에는 우리 집에 딸 친구인 꼬마들도 어른들도 들락거린다.
그러나 가장이 일찍 귀가하는 토요일이 되면
그들의 발길은 끊어지고
우리 집은 적막하다.
딸애는 정오경 귀가하는 친구 아빠들을 사택 이층 베란다에서 부러워하며 내다본다.
(1983년에는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했다.)
1984년 1월 7일.
아들이 태어난 지 일 년이 되었다.
첫 생일.
추운 겨울날씨에다 구름까지 잔뜩 끼었다. 마음까지 시리다.
아침부터 나는 이날을 생각해 보고 싶지 않았다.
담담하게 그냥 빨리 이날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첫째 딸 돌날에는 친척들과 손님들로 집안이 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는데...
남편도 없고 동네분 발길도 끊어지진 토요일 이날, 집안은 적막하다.
딸애는 방 안에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둘째는 돌이 되었지만 앉지도 못한다. 누워만 있다.
과연 이 애가 서기는 할지...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문다.
(아들은 지금 태권도 유단자)
힘든 오전이 지나고 오후 해가 질 무렵, 아랫집 사는 교회의 같은 구역분이
자기 집으로 애들을 데리고 오란다.
식사 때인데 웬일일까?
두 애를 안고 걸려, 아랫집 문을 들어섰다.
"축하해요!" "축하해요"
어마나~
교회 구역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다.
조촐하게 돌 상이 차려져 있었다.
멀리까지 가서 사 오신 케이크까지...
한때 교회 근처에 돌사진 전문 사진관이 있었다.
주일날 그곳을 지나치면 돌사진 찍는 가정들을 본다.
한껏 치장한 엄마 아빠와 아기.
내 아들의 돌날을 생각해 본다.
아들은 돈을 들인 저런 호사를 못 누렸지만 주께서 보내주신 인간 천사들이 마련해 준 아름다운 돌잔치를 했다네...
주님은 손이 없으시다.
대신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일을 하도록 하신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습니다'라는 익명의 詩가 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습니다.
단지, 오늘날 그분의 일을 수행할 우리의 손 밖에는.... '
부족한 아들을 나 홀로 내 힘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힘들고 막막하고 절망스러웠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그분이 인간 천사를 처처에 심어주셨는데.
그러니 '걱정 근심 말아라 주 너를 지키시리'라고 찬양한다.
아들만 부족한가?
세상에 주님의 보호, 인도하심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난 사십여 년 아들이 걷는 길에, 아니 내가 걷는 길에 만난 수많은 인간 천사들...
교량을 건느는데 가로등 위에 새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혹시 저 애들은 우리 인생길에 무어가 또 필요한지 알아보러 하나님께서 보내신 새들?
주께서 보내신 각가지 선물로 감사하다.
특히 인간 천사들의 도움이라는 선물!
나도 누군가의 선물이 되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