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크
문구점에 갔다.
책 읽을 때 밑줄 그으려는 용도로 색연필 하나 살까?
빨간 색연필?
아니야. 평생 내가 좋아하는 '블루'컬러('파란색'보다 간지 나지?)
처녀 때 교사 시절, 사 계절을 블루색 옷으로 지낸 적도 있다. 원피스, 블라우스, 니트, 바지, 스웨터, 재킷까지 블루.
60년대 초등학교 시절의 미술시간, '왕자표 크레파스 '를 가진다는 건 요즘에 그럴듯한 수입 승용차 갖는 것에 비유하면 좀 과한가?
비싼 승용차 '잠깐 빌려줘'처럼 '왕자표 크레파스 잠깐 빌려 쓸게'라는 말은 친구 간에 할 소리가 아니었다.
4학년 때, 아버지가 사 주신 36색 왕자표 크레파스.
그 종이박스를 처음 열었을 때의 그 냄새. 지금도 기억한다.
그것은 마구마구 문지르는 게 아니었다. 살금살금 색깔만 내는 것. 적어도 3년간 써야 하므로.
그림 그리는 아들.
아들의 72색 색연필.
색연필 통 안에는 온갖 아름다운 색연필들이 있다.
아들은 그 중 하나를 고른다. 마치 달콤한 캔디 통에서 하나 고르듯.
그리고 맛있게 색칠한다. 캔디를 음미하듯 입을 다시며.
아들의 행복한 시간!
'언젠가는 나도 이런 아름다운 색을 써 볼 거야' 부러워하는 엄마.
색연필 코너로 갔다.
칸칸에 수많은 색깔의 색연필들이 들어있었다.
그중 블루.
아이고머니나, 파란색 종류가 이렇게도 많다니.
허기야, 파란 하늘도 사실 매일매일 다른 파란색.
하루의 하늘도 이쪽과 저쪽이 다른 파란색이지.
라이트 블루, 블랙베리 블루, 코발트블루, 헬리오 블루,
라이트 아쿠아, 태닝 블루,
코펜하겐 블루, 피코 블루,
아쿠아 머린, 울트라머린,
캐러비언 블루, 트루 블루.
블루 레이크, 차이나 블루,
블루 바이올렛 레이크,
에릭 트릭 블루, 파우더 블루,
스카이 블루 라이트, 블루 슬레이트, 클라우드 블루,
블루 메디테리언...
나는 그 중 하나를 집었다.
그 색연필의 이름은 blue lake-파란호수!
'파란호수'로 성경에 밑줄친다
'파란 호수' 위로 이천년 지난 말씀이 드러난다.
'파란호수'로 시집에 줄 그으니
'파란 호수' 위로 아름다운 詩가
꽃송이 되어 핀다.
'파란호수'로 문장을 파랗게 테 둘렀더니
'파란 호수' 안으로 출렁출렁 시간의 기억들이 넘나든다.
사랑스러운 글자들이
작은 돛단배같이, 아기 오리같이, 종이배같이 둥둥둥 떠다닌다.
때로는 말씀이 버거워
물 아래로 가라앉을듯하면
얼른 그 말씀을 떼어
내 가슴에 넣는다.
때로는 詩 구절이 눈물겨워
호수에 녹아버릴 듯하면
얼른 손수건을 얹는다.
때로는 말씀이 은혜로워
푸른 호수에 무지개 뜨면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두움
사라진다.
푸른 호수 위,
'푸른호수'의 낚싯줄을 드리운다.
<lake Tahoe California>
<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