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밥
1950년대,
일 인당 국민 총소득이 채 70불이 안되던 시절.
1953년 66달러.
2022년 3만 2886달러
(70년 만에 500배 부유해졌다.)
그 시절 어느 날,
초등학교 막 들어간 나와
세 살 위 오빠랑 둘이 집에 있었다.
아마 방학 때였나 보다.
점심시간이 거진 다 지나가고 있는데 동네 마실 나가신 어머님이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취사는 연탄불이나 곤로를 사용하던 때.
간단한 요깃거리 라면이 있지 않냐고?
졸업식 때 나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 한 그릇이 20원일 때 라면 한 봉지는 10원.
특별한 날, 동네 구멍가게에서 하나씩 사 와서 끓여 먹는 비싼 음식.
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50~60년대는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쌀도 연료도 부족하니 보통 점심 식사는 따로 준비 안 한다.
아침에 지은 밥솥에 남은 밥,이라기보다 바닥에 붙은 누렁지에 물을 부어 불려 먹는다.
밥이 조금 남아있으면 누룽지밥. 아니면 숭늉.
항상 있는 반찬인 김치랑 한두 숟갈 먹는 點心.
마음에 점하나 찍는다.
엄마가 계시면 어떻게 먹을게 무어라도 나올 텐데...
아침에 먹던 솥 안을 보니 오늘따라 누룽지조차 거의 없는 맑은 숭늉.
허기가 진 오빠와 나는 그 숭늉을 떠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맹물이 아니라 밥 물이니 밥 삼아서.
오빠 한 숟갈
나 한 숟갈.
간간이 김치를 먹으며.
얼마나 맛있었는지.
시장이 반찬이긴 했다.
70년 초기 고등학교 시절 어느 겨울날.
교실에는 난방시설은 물론이고 전기 불도 없다. 걸상마다 두툼한 방석으로 각자 보온.
60여 명의 십 대 소녀들의 청춘의 열기로 차가운 교실을 데웠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에 창문을 열어 환기하기엔 춥다.
11시경 셋째 시간이 시작되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수학선생님, 코를 벌렁거리셨다.
얼굴을 찌쁘리신다.
"다들 도시락 끄집어내."
아차
분명 아침밥은 집에서 먹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배가 고팠다.
아니다. 맛난 도시락. 밥과 김치.
그 유혹에 둘째 시간 쉬는 시간에 먹어버린 거다. 너도 나도.
레시피는 이렇다.
도시락이라 해도 메뉴는 대개 양은 도시락에 담긴 보리밥.
그리고 미국에서 흘러든 아기 유아식 거버 유리병에 조심스레 담긴 김치.
가끔 소금을 듬뿍 넣어 넓적하게 프라이 한 계란 하나가 담긴 날은 특식.
양은 도시락에 담긴 밥을 몇 숟갈 덜어먹는다.
뚜껑을 닫고 유일한 반찬인 김치와 김치 국물과 밥을 마구 흔들어 섞이게 한다.
학교에서 영양 맞혀 이런저런 반찬을 제공하는 급식을 먹는 요즘 애들은 상상 못 하는 꿀맛.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
그런데
그 겨울
환기 안된 교실에서 60여 명의 여학생이 뿜어내는 열기와 시큼한 김치냄새가 혼합되어 수업 들어오신 선생님을 괴롭게 한 거다.
도시락 검사로 수업 시간 절반은 날아갔다.
그날 김치밥을 너무 사랑했던 여학생들은 줄줄이 교무실 복도로 끌려가 빈 도시락통을 입에 물고 양손을 드는 수모를 당했다.
물론 나도.
<양은 도시락 통>
< 김치통으로 쓰인 거버 이유식 병>
오래 살다 보니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이런저런 음식들을 먹어볼 기회가 많았다.
진귀한 음식
유명한 음식.
특별히 일식, 동남아 음식, 멕시칸 음식이 좋다.
그러나 한두 번이다.
먹고 먹어도 맛난 음식
그것은 김치와 밥.
감기라도 걸려 밥맛없을 때 물에 밥 말아 김치와 먹는다.
외국 나가서 이틀만 되면 김치와 밥이 그립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은 김치와 밥이다.